1997년 월간 문학사상 소설 부문에 등단한 이재익 PD는 <질주 질주 질주>로 한국장편소설상을 수상했습니다. 2001년부터는 SBS 프로듀서로 활동했으며, <미스터 문라이트>,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아버지의 길> 소설을 집필하고 <키스의 여왕> 등의 웹소설을 연재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팟캐스트 프로그램 <씨네타운 나인틴>을 10년째 진행하면서 오전에는 일하고, 오후에는 글을 쓰고, 저녁에는 재미있는 기획을 꿈꾸고 있다고 하죠. 오늘은 24시간이 모자를 만큼 종횡무진 중인 진정한 N잡러 이재익 PD를 만나보겠습니다.
Q. 다양한 활동으로 진정한 N잡러로 불리고 계신데, 직업을 어떤 순서로 소개해야 할까요?
투입 시간의 우선순위로는 본업인 라디오 PD, 소설가, 웹툰 작가, 팟캐스트 DJ, 에세이스트로 소개해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작년까지 두 번째 순위는 고등학생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 주는 ‘라이더’였습니다.(웃음)
Q. 일찌감치 소설가로 등단한 이후 다양한 일을 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모든 일을 벌였으면 도망쳤어요. 개구리가 들어 있는 물에서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N잡에 적응했죠. 글 쓰는 걸 좋아해 소설을 시작했고, 운 좋게 수상을 하며 등단할 수 있었어요. 이후 방송국 입사를 하고, 꾸준히 쓴 소설을 통해 영화 시나리도 제안이 들어왔고, 아버지가 되었고… 제가 쓴 소설을 웹툰으로 구현하는 등 하나씩 일을 얹어 나갔던 것 같아요.
Q. 창작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나요?
사람을 관찰하고 상상하는 걸 좋아해요. ‘이 사람은 어린 시절에 이랬을 거야’ ‘평소 취향은 이럴거야’ ‘음식은 뭘 좋아 할거야’ 이런 식이죠. 또한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옆 차의 운전자, 지하철 맞은편 승객, 뉴스에 나오는 굉장히 특이해 보이는 인물이 있을 수 있어요.
Q. 권태기나 번아웃이 온 적은 없었나요?
감사하게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번아웃을 겪은 적은 없었어요.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으면서도 연관이 있는 활동을 다양하게 하다 보니 한쪽에서 번아웃이 생기면 다른 걸 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넘겨왔던 것 같아요.
성공만 해온 것 같지만 사실 라디오 PD라는 직업도 몇 번의 실패 끝에 찾은 길이예요. 첫 직장이 외국계 음반 회사였는데 당시 음반 시장이 침몰하는 현장을 목도하고 한 달도 안 돼서 퇴사를 했어요. 이후 광고회사에서는 1년 정도 근무했는데, 불규칙한 생활로 앞날을 예상할 수 없어 대책 없이 그만뒀죠. 이후 벌어 둔 돈을 까먹으면서 쉬다가 SBS 프로듀서로 입사했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스쿨 밴드에서 공연도 많이 하고, 글도 쓰고 등단도 하고, 영화 시나리오 작업 등 다양한 경험을 했던 이력이 면접관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던 것 같아요. 이런 이력이 아니었으면 택도 없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필기시험은 거의 마지막 문을 닫고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Q. 그때 면접에서 떨어졌다면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요?
칸 영화제에 가 있지 않을까요? 지금 내 작은 성공이, 미래에 발생했을지도 모를 더 큰 성공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내가 겪은 실패가 미래의 성공을 위한 기회일 수도 있겠죠.
Q. 스스로 꼽는 본인 최고의 작품은?
<아버지의 길>이라는 소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미합중국에게 독일 군복을 입은 한국인이 포로로 잡히게 된 사건을 모티브로 했어요. 그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감정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시대적 고증을 성실히 해냈다고 생각해요. 자부심이 있는 작품인데 작가의 만족감과 흥행은 거리가 멀더라고요.
Q.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이나 소설 있나요?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단편집이 있는데, 일상 속에서 공감할 법한 감각을 잘 끄집어내요. 이를테면 당근마켓에서 거래할 때 느꼈던 감정들 있잖아요. 가능성이 큰 작가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Q.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을 10년째 진행하고 계세요.
가수나 감독, 배우들은 계속 변화를 시도하지만, 우리는 10년 전 B급 감성 그대로예요. 변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신선했던 것 같아요. ‘쟤네는 아직도 저러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요.
청취자분들이 10주년을 축하해주고 함께하고 싶어 하면 저희도 그 마음에 응답해야죠. 공개 방송일지 토크 콘서트일지 아니면 릴레이로 무언가를 할지 아직 어떤 방식일지는 모르겠어요. 팬분들과는 같이 사는 이웃처럼 느껴지는데 힘이 닿는 한 계속 같은 자리에서 웃음소리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Q. N잡러를 꿈꾸는 직장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생에는 ‘성취감’, ‘편안함’, ‘즐거움’ 등 다양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 가질 수는 없어요. 내 인생에서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면 그 과정이 절대 평온하거나 편안할 수 없어요. 다양한 일들을 하고 싶다면 이것을 위해 무엇을 버릴 수 있는 지부터 생각해봐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확실하게 성취하고 싶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단계를 알아 두는 것이 좋아요. 처음은 의지의 단계, 그 다음은 노력의 단계, 마지막은 습관이 되어야 해요. 계속 노력하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습관의 단계에 이르게 되죠.
팟캐스트도 이렇게 습관처럼 10년 가까이 운영해왔죠. ‘오늘도 3시간 녹음해야겠구나’ 이 악물고 노력만 해서는 10년간 못 해요.
Q. 크리에이터로서 인생의 화두는 무엇인가요?
기존에는 매체와 스토리텔링 방식의 유행이 하나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흔히 ‘현판’이라고 부르는 현대 판타지 장르나 웹툰을 기반으로 만든 설정과 내러티브는 제가 노력한다고 따라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더라고요. ‘내가 이제는 너무 오래되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힘들었어요. 이 시대적 흐름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요즘 가장 큰 화두예요.
Q. 블로그 프로필의 소개글 ‘내가 꼰대로 변하면 계단에서 밀어줘’가 인상적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열광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커요. 그 열망의 발로일지도 모르지만 어디서든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제 환경은 꼰대가 되기에 참 좋거든요. 나이도 그렇고 아들은 대학생이고, 방송국에서도 연출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가르치려 들고 강요하려는 태도가 저 스스로도 싫더라고요.
Q. 재테크에도 상당한 식견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세요.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외삼촌 댁에 방문했는데, 한강의 밤을 배경으로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의 모습이 황홀하더라고요. 대학생 때부터 수많은 모델 하우스를 다니기 시작했고, 강남 아파트 역사는 다 꾀고 있습니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부동산, 코인, 주식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자산 폭등의 시대를 경험했는데요. 그 핵심은 희소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투자도 더 많은 사람이 욕망하는 곳은 어디일지 집중하면 지도가 새롭게 다가와요. 물론 투자 가치와 내가 선호하는 부동사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죠.
Q.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은데 피디님의 첫 차는 무엇인가요?
인생 첫 차가 현대차였어요. 대학생이 되자마자 어머니께서 타시던 현대차 엑셀을 제가 샀거든요. 그 다음차는 아반떼였고, 제대하고 나서는 쏘나타를 탔죠.
이후 영화 <분노의 질주>에 나오기도 했던 이클립스라는 스포츠카를 탔어요. 외관도 멋지고, 빠르고 만족스러운데 실내 착좌감이 다소 아쉬웠어요. 쏘나타는 정말 운전하기 쉽고 편한 차였다는 것을 그때 깨닫았어요.
Q. 자동차 애호가로서 향후 자동차가 발전한다면 가장 기대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어느 날 전기차 택시를 탔는데 제가 지금 타는 전기차에서의 편안함과 거의 비슷했어요. 전기차는 소음과 진동이 거의 없으니까요. 고급차의 강력한 경쟁력이 표준화가 된 셈이죠. 이 지점에서 각 전기차 브랜드가 어떻게 차별화하고 극복할지 궁금해요.
Q. 마지막으로 현대트랜시스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동차 공장은 컨베이어 벨트라고 하는데 때로는 반복된 업무에 지치는 날이 있을 것도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상상을 가끔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시트에 앉아서 운전하는 사람을 상상해보면 재미있을 때가 많아요. 나중에 이 시트에 앉아서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나 뒷자리에서 수다를 떠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글 김우현
포토 안용길(도트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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