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통계누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누적 전기차 등록 대수는 29만8633대로 집계되었습니다. 국내 전기차 시장은 지난해 누적 대수를 올 상반기에 이미 넘어섰는데요. 이처럼 전기차 시장이 급격히 증가하자, 전기차 폐배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가 2020년 약 4000억 원에서 2025년 3조 원으로 연평균 47% 성장한 뒤 2030년 12조 원, 2040년 87조 원으로 연평균 2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전기차 폐배터리, 황금알 낳는 거위 될까?
일반적으로 전기차 배터리는 보통 5~10년 운행 이후 초기 용량의 70~80% 수준으로 감소해 교체나 폐기 대상이 되는데요.
수거한 배터리 중 최상위 품질은 다시 ‘재제조’하고, 잔존가치가 있는 경우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전기차 충전소, 전기자전거 배터리 등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게 됩니다. 재사용이 어려운 경우 폐배터리에서 배터리의 주요 원료인 니켈과 코발트 등의 금속을 추출해 새 배터리에 탑재하는 ‘재활용’을 하게 됩니다.
이 중 가장 기대감이 높은 분야가 배터리 ‘재활용’ 인데요. 배터리 제조사들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미래 사업으로 정하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은 경제성과 환경 보호 관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배터리의 주요 원료인 니켈과 코발트 등 원재료를 다시 사용함으로써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의 ESG 강화와 원자재 자급화에 대한 움직임도 폐배터리 재활용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EU는 전기차 생산 시 재활용 원료 사용을 의무화했는데요. 2030년부터 새 배터리 제조 시 코발트 12%, 니켈 4%, 리튬 4% 이상을 반드시 재활용 소재로 사용해야 한다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배터리 주요 소재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높은 점도 폐배터리를 재활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중국은 리튬, 코발트, 망간 매장량이 세계 상위권일 뿐만 아니라 배터리 광물을 채굴하는 아프리카 주요 광산들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를 발효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전기차 구매자들은 전기차 배터리 원자재의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한 경우에만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원자재 자급화를 통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자원 무기화를 막기 위한 행보로 보입니다.
쑥쑥 커지는 폐배터리 시장, 주목할 기업은?
국내 배터리 3사는 주요 원료에 대한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수급을 안정화하는 차원에서 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GM과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를 설립하고, 폐배터리 재활용업체 ‘라이사이클(Li-Cycle)’에 6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투자하여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황산니켈을 10년 동안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또한 폐배터리를 재활용해서 만든 전기차용 충전 ESS 시스템을 오창공장에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신성장동력으로 BMR(Battery Metal Recycle)을 선정하고, 폐배터리에서 고순도 광물을 추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3~4년 전부터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투자하며 폐배터리에서 수산화리튬을 추출하는 독자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는데요. SK그룹은 SK온의 배터리 제조, SK에코플랜트의 폐배터리 회수와 분해, SK렌터카의 배터리 실시간 사용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통해 그룹 차원에서 배터리 생애주기에 걸친 폐배터리 순환 경제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삼성SDI는 폐배터리 재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2020년 천안과 울산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순환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재활용 전문 업체가 수거한 후 공정을 통해 황산니켈, 황산코발트 같은 광물 원자재를 추출하는 것인데요.
이렇게 회수한 원자재는 배터리 관련 파트너사에 전달되어 삼성SDI에 재료를 공급하는 원부자재 제조 공장에 다시 투입됩니다. 삼성SDI는 향후 헝가리와 말레이시아 등 해외 공장에도 유사한 협력 체계를 갖추고 원자재 재활용에 나설 계획입니다.
폐배터리 사업에 출사표 던진 글로벌 완성차 그룹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독자적인 폐배터리 기술 투자와 재활용 업체와의 협력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현대차그룹은 폐배터리 테스크포스팀을 신설하고 폐배터리를 ESS로 재사용하거나 원자재를 추출해 재활용할 예정인데요.
글로벌 물류망을 갖춘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전 세계 폐차장이나 딜러점에서 폐배터리를 회수한 뒤 ESS로 재사용하는 것입니다. 수거한 배터리 중 최상위 품질의 배터리는 현대모비스가 재제조하고, 재사용이나 재제조가 어려운 배터리는 분해한 뒤 주요 원자재를 추출해 다시 배터리를 만드는 데 재활용합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OCI와 협력해 전기차 폐배터리와 태양광 발전소를 연계한 재사용 실증사업에 착수했고, 올해 9월 미국 텍사스주에 전기차 재사용 배터리를 활용한 ESS 큐브를 설치할 계획입니다.
또한 기아 유럽법인은 독일의 국영 철도회사 도이치반(DB)의 스타트업 ‘앙코르(Encore)’와 유럽에서 판매된 자사 전기차에서 수거한 폐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기아와 앙코르는 지난 8월 독일 베를린의 EUREF-캠퍼스에서 기아 쏘울EV 배터리 모듈로 만든 프로토타입 배터리에너지저장시스템(BESS)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테슬라는 배터리 기술 내재화를 선언하고 배터리 재활용 시스템을 공개했는데요. 2016년부터 연구한 기술을 바탕으로 폐배터리에서 배터리 소재의 92%를 회수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테슬라는 전기차 생산과 함께 대형 ESS 팩토리 분야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는데 여기에 전기차 폐배터리가 재사용될 전망입니다.
폭스바겐은 배터리 원자재에서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배터리 사업을 관리하기 위한 회사인 파워코(PowerCo)를 설립하고, 폐배터리에서 원자재 회수율을 현재 60%에서 95%로 높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년 초 독일에서 배터리 재활용 공장 시험 가동에 들어갔는데요. 폐배터리 2차 임대를 통해 배터리 팩을 가정용 전력센터와 급속충전기 등 새로운 용도로 재사용할 예정입니다.
이 밖에도 포드는 미국의 배터리 재활용 스타트업 레드우드 머티리얼즈와 함께 자체 배터리 공급망에 적용할 재활용 프로세스 협약을 맺었습니다. 여기엔 포드가 SK온과 세운 합작법인 ‘블루오벌SK’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배터리가 활용될 예정입니다. 레드우드 머티리얼즈는 테슬라와 포드 외에도 볼보, 도요타자동차와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아직 전기차 시장이 초기 단계지만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이 10년에 못 미치는 만큼 수년 내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크게 활성화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규제를 완화하고 배터리 생애주기 이력 체계를 만들어 관련 부처, 보험사와 정보를 공유하는 등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요.
친환경차 시대, 경제성과 환경보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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