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면 사람들은 그 일을 수행한다”
책 「무조건 달라진다」의 저자이자 UCLA 디지털 행동 센터 숀 영 소장의 말입니다. 아침에 출근 전 운동하는 루틴을 만들고 싶다면 화장실 문 앞에 운동복을 두는 것처럼 환경이 어떤지에 따라 일이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고, 더욱더 수월할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김난도 작가는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핀셋처럼 고객 특성을 골라내고, 현미경처럼 고객 니즈를 찾아내며 낚싯대처럼 기업 본연의 역량에 집중하는 것을 ‘특화생존’이라는 키워드로 표현했습니다. 즉 고객사의 특성을 콕 집어내는 핀셋 전략, 고객사의 가치관, 집단 패턴 등을 들여다보는 현미경 전략 등 다양한 경쟁력을 스스로 갖춰야 까다로운 고객사 담당자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대격변
어느 기업이든 기존의 영역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발굴하기 위한 신규영업 활동을 합니다. 현대트랜시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국내 고객사와 더불어 다양한 글로벌 잠재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수주를 도전하고 일부는 성공하기도, 일부는 실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업의 독자생존을 위해 또 도전하죠.
때로는 현대자동차 그룹사라는 요소가 신규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할 때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긍정적인 면은 현대자동차의 시트를 만드는 곳이니 우리의 실력이 자연스럽게 입증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고객사는 자신들의 기술이나 신차 정보가 경쟁사인 현대자동차로 새어 나갈까 봐 우려하기도 합니다. 근본적인 의구심이 항상 따라붙죠. 그래서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대기업 부품그룹사는 독자생존이 아닌 그룹사 제품만 대응하는 것으로 노선을 바꿨어요.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 회사의 더 큰 미래 발전상과 성장을 위해 다른 고객사를 꾸준히 발굴하여 우리만의 특화생존을 위해 영업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올해 자동차산업 환경은 더욱 가혹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잠재고객사들, 즉 자동차기업들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발표했던 차량생산 계획들이 축소되고 변경되어 완전히 새로운 미래에 직면했습니다. 대기업 계열 부품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화생존은 이제 하나의 옵션이 아닌 정답이 되고 있죠. 고객사가 내년에 신제품을 개발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더라도, 원래대로라면 대응이 가능했던 유수의 글로벌 최상위권 부품사들이 서서히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2차, 3차 부품사들은 말할 것도 없겠죠. 공장과 연구소는 가동 중단이 되고, 경영층은 유례없는 경영환경 속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미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안정적인 코로나19 대응 덕분에 가동 중단 이슈가 한정적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빠른 시일 내의 방역과 대처를 진행하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국가 시스템 속에서 현대트랜시스는 글로벌 고객을 대응할 때 제품 개발단계에서 정해진 기간 내에 샘플을 만들고 설계가 가능합니다. 이것은 해외영업 담당자에게 새로운 기회 요인입니다. 우리만의 특화생존 방법이 생긴 셈이죠. “우리는 이러한 위기에도 셧다운 되지 않습니다.”라는 신뢰를 고객사에 줄 수 있으니까요.
해외시트 영업은 조금 다르다
해외영업 업무를 이야기하려면 현대트랜시스의 양 사업 포트폴리오인 시트와 파워트레인을 비교하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해외영업 업무는 이 두 제품에 따라 숙지해야 할 영업 포인트도 다르고, 진행 방식도 다르죠. 파워트레인 제품은 전 세계에서 만들 수 있는 기업이 많이 없기 때문에 믿을 만한 부품사 한 곳에 전량을 맡기고 대륙에 하나 정도만 공장이 있으면 수출을 통해 대응을 하는 방식이 주입니다.
반면에 시트는 파워트레인에 비해 볼륨과 부피가 큰 제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자동차 조립공장 인근에서 공급을 해야 해요. 그렇기에 신규고객사를 대상으로 수주를 하고 싶다면 고객사 공장의 주변에 새롭게 공장을 건설할 여건이 되는지를 면밀히 파악해야 하죠. 이미 경쟁사들이 공장 옆에 공장을 가지고 있고, 엄청난 돈을 들여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임대하기 때문에 신규 수주를 맺는 것이 도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미 스타트업 수주를 진행하면서
저도 어느덧 이 시트해외영업 업무를 전담한 지 9년 차가 되어 가네요. 현재 저는 판교에 소재한 서울 사무소에서 북미시장의 전기차 스타트업 2사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을 담당하고 있어요. 해당 프로젝트들은 현재 양산을 준비하는 중인데, 여기서 발생하는 여러 세부적인 이슈에 대응하고 있죠. 일반적인 예상과 다르게, 오히려 수주 이후 양산을 준비하며 발생하는 업무와 수주를 준비할 때의 업무를 비교할 때 10배 정도의 업무량 정도로 체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웃음)
이번 북미 스타트업 수주를 맺고 양산을 준비하는 과정을 전반적으로 함께하면서, 기존 고객사와 신규고객사와의 프로세스 차이를 항상 유념하려고 합니다. 기존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의 경우 같은 그룹사이기에 단가나 양산 프로세스 면에서 풍부한 배경지식이 있기 때문에 ‘신속한 대응’이 원칙적으로 가장 중요합니다. 반면에 글로벌 신규고객사들과는 서로의 업무 환경과 배경을 알아가야 하고, 이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도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확실한 원인에 대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소명하고 협의해 해결해 나아가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기에 해외영업 담당자는 일을 절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고객사에서 원하는 사양 등을 내, 외부에서 커뮤니케이션하며 확인해가고 그림을 만들어가는 일이니까요.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에서도 이해를 공감하는 데에만 많게는 몇 주가 걸리는 경우도 있어요.
현지 고객사의 니즈에 맞춘 특화생존만이…
저는 북미 스타트업 수주에 참여하면서 국내 부품사가 글로벌 자동차기업의 수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업의 현지화’라는 방향성을 갖고 가고 싶습니다. 북미 스타트업 인근에 위치한 미시건 법인의 직원들이 현지 시장조사를 포함해 잠재 고객사들과 꾸준히 커뮤니케이션하며 신뢰감을 쌓아왔기에 이러한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해요. 17년 상반기에 최초로 해당 고객사들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RFQ(Request For Quotation)가 공식적으로 나오기 전부터 1년 넘게 계속 두 기업의 담당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니즈를 분석했어요.
또한 수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그 이후도) 고객사의 요청사항을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점이 정말 중요해요. 그렇기에 연구 주재원과 현지 우수인재를 영입하는 과정들을 보여줘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이것이 수주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고객은 현대트랜시스를 잘 모르고, 현지인은 특히 국내 본사의 역량은 더더욱 모릅니다. 거기에 본사는 현지와 거리가 떨어져 있다 보면 많은 소통 문제를 느끼게 되죠. 더 많은 수주 계약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시건법인의 사례처럼 현지의 영업 전문가들을 비롯해 본사의 담당자들도 직접 현지에서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본사의 역량과 연결해 솔루션을 제시해야 합니다.
“듣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듣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지금껏 일해오며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할 때마다 되새기는 마음 속 문구입니다. 고객사 담당자와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중요한 사안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답변도 그들이 알고자 원하는 것만을 빠르게 알려주고 그 이후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덧붙이려고 하죠. 제 역할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째 저는 제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정해져 있어요. 고객사명을 자세히 밝히지는 못하지만, 북미시장의 한 기업의 제품 수주를 목표로 지금까지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어요. 워낙 협력사를 바꾸지 않기로 유명한 기업이라 모두가 만류하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만나고, 그들이 필요한 자료를 수시로 제공하고 있어요. 처음 막막한 시기를 지나 서서히 목표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게 저는 느껴지거든요. 해당 기업의 담당 임원이 어느 날 이야기하더라고요. “미스터 정, 더 이상 운동장에서 놀지 말고 교실 안으로 같이 들어와요”라고. 결과만큼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무수히 많은 어려운 일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 주죠.
자동차 시트해외영업 전문가 정인창 책임매니저는
- 2012년부터 9년 째 시트해외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 최근에는 북미 전기차 스타트업 수주 프로젝트에 참여해 수주개발영업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 제품 수주 큰 건을 해서 회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 특정 기업을 목표로 7년째 준비 중이다. ‘그 수주 정인창 책임이 했지!’라는 말만 들어도 행복할 것 같다는 내추럴본 영업담당자.
- 주말에는 아내와 중학생인 두 딸과 함께 등산하는 것이 취미. 큰딸이 시험을 망쳤을 때는 함께 워크샵을 갖고 동기부여 방법을 고민하는 열정 아버지
에디터 이은지
사진 안용길, 셔터스톡 ,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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