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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 기술의 현재 그리고 미래

 

지난 5월 현대자동차그룹과 한국마이크로소프트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전기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성능을 관리하기 위해서로 알려졌는데요.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이 디지털 트윈입니다.

 

전기차 배터리 성능 관리에 '디지털 트윈' 기술 시험 도입한 현대자동차그룹

 

많은 기업들이 미래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디지털 전환에 있어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데요. 오늘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트윈의 핵심 개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현실과 똑같은 ‘가상의 쌍둥이’, 디지털 트윈이란?

 

디지털 트윈은 단순히 가상의 세계에 현실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실제 사물의 물리적 특징을 가상 세계에 고스란히 구현하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2002년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마이클 그리브스(Michael Grieves) 박사가 처음으로 이 용어를 제안해 사용되기 시작했는데요.

 

현실을 반영한 가상의 세계라는 점에서 메타버스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두가지는 확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메타버스가 현실과 가상의 ‘연결’을 통해 감각과 경험의 확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디지털 트윈은 현실의 모방을 넘어선 있는 그대로를 반영한 가상 세계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쌍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죠.

 

디지털 트윈 기술의 핵심은 ‘실시간 동기화’인데요. 이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정확한 3D(3차원) 객체로 제작할 수 있는 빅데이터, 3D 모델링 기술 외에 IoT(사물인터넷) 센서, 5G 네트웍스, 클라우드, 엣지컴퓨팅 등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트윈은 메타버스보다 실용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가상의 공간에는 물리적 제한이 없는 만큼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면 간편하고 쉽게 다양한 실험이 가능합니다. 또한 실제로 실험하는 것에 비해 비용도 적게 들며, 결과가 실패하더라도 가상 공간에서 벌어진 일인만큼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미 디지털 트윈은 개념이 정립되기 전부터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 현장에서 적용되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입니다. 1970년대 고장 난 아폴로13호를 무사히 귀환 시키기 위해 가상의 세계에 우주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고 모의 귀환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것인데요.

 

우주를 흉내내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우주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와 완전히 일치하는 환경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후 2010년, 나사는 ‘항공우주국 기술 로드맵 (NASA Technology Roadmap)’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트윈을 17번이나 언급했고, 이때 이 용어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진출처: GE 프레딕스

 

산업 현장에서 디지털 트윈의 효율성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미국의 가전 업체 제너럴 일렉트로닉스(GE)의 역할이 컸습니다. GE가 2016년 공개한 프레딕스(Predix)는 스마트 팩토리 내의 설비 제어와 제조 과정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최적의 관리 효율을 제공하는데요. IoT와 엣지 컴퓨팅 기술 기반으로 20만 개 이상의 장치에서 나온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관리합니다. 말하자면 프레딕스는 세계 최초의 스마트 팩토리 내 클라우드 기반의 디지털 트윈 솔루션이죠.

 

GE predix 플랫폼 (사진출처: GE 프레딕스)

 

프레딕스가 주목받은 이유는 제조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획기적인 효과를 냈기 때문입니다. GE 항공은 프레딕스를 활용해 제트엔진의 고장 여부와 장비 교체 시기 등의 예측도를 높였는데요. 그 결과 엔진 고장 예측의 정확도가 10% 이상 증가했으며, 장비 고장으로 인한 결항도 1000건 이상 줄일 수 있었습니다.

 

빠르게 확장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

 

과거 일부 분야의 모의 실험 형태로 활용됐던 디지털 트윈은 최근 AI(인공지능), XR(확장현실), 5G 등 기술 발전과 더불어 의사결정이 필요한 모든 산업 분야로 빠르게 확장되는 추세입니다. 또한 교육, 의료,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디지털 트윈 활용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일본의 모든 비즈니스에 ‘시뮬레이션’이 필수이기 때문이죠. 특히 건축 분야에서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는 사례가 많은데, 건설 및 광산 기계 업체 코마츠가 대표적입니다.

 

가상 토목 현장으로 실제 측량 프로세스 효율을 높인 코마츠의 스마트 컨트랙션 (사진출처: 코마츠)

 

코마츠는 드론으로 지형 데이터를 취득해 3차원의 가상 공간에 토목 현장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는데요. 이를 통해 공사 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등 측량 프로세스를 효율화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약 4일이 걸리던 측량 업무를 20분 만에 끝내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죠.

 

또한 공사의 진척 상황이나 현장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주요한 장점입니다. 매일 업무 시작과 마지막에 현장의 데이터를 반영해 디지털 트윈을 업데이트함으로써, 공정의 진척을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장 책임자와 경영자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도시에 활용된 사례도 있습니다. 일본 도쿄시는 3D 모델로 도쿄의 거리를 재현하는 디지털 트윈 제작을 진행 중입니다. 지난 2021년부터 일조량, 풍량, 교통 상황 등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취득해 가상 공간에 반영하는 실증 사업을 실시했는데요. 이 사업은 유효성이나 활용법을 검증하면서 2030년까지 체계화할 계획입니다.

 

이외에도 방재 및 도시 조성, 모빌리티 활용, 에너지 효율화, 자연과의 공생, 웰니스, 교육, 노동방식의 다양화, 산업 진흥 등 9대 분야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트윈 사회 구현 실증 실험도 시작했습니다.

 

싱가포르 가상도시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를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하는 ‘버추얼 싱가포르(Virtual Singapore)’ 프로젝트를 전개했습니다. 이는 각종 재해 재난과 실생활에 밀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되는데요.

 

싱가포르 정부는 지난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약 1000억 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해 2018년 가상의 도시를 완성했습니다. 단순히 도시의 외양만 3D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전기·가스·교통 등 사회 필수 인프라, 기상 정보, 인구통계, 시설물 정보 등 건물 내부까지 데이터로 수치화해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도록 구현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지속적인 데이터 업데이트를 통해 버추얼 싱가포르를 스마트 국가 건설의 핵심 플랫폼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입니다.

 

자동차 시장의 디지털 트윈

 

자동차 산업도 디지털 트윈이 활발하게 적용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자율주행차는 물론 전기차의 배터리 수명 예측 등에 활용이 가능합니다. 특히 디지털 트윈을 통해 도로 위를 달리는 전기차와 똑같은 전기차를 가상의 공간에 그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데요.

 

이런 기술이 가능한 것은 실제 전기차에서 수집된 각종 주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물리 모델을 아우르는 고도의 데이터 통합 분석 모델로 배터리 성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충전 방전과 운전 습관, 주차 및 주행 환경 등 차량별 정보를 종합해 분석함으로써 배터리 수명 예측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진출처: GE리포트 코리아

 

GE는 최근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에너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해 풍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을 통해 풍력발전소가 전력을 생산해낼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GE 측에 따르면 풍력발전소 건설 시, 디지털 트윈을 적용할 경우 에너지 생산성을 2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하네요.

 

또한 풍력발전 인프라에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시각적으로 풍차의 수명과 열화 예측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풍향에 맞춰 발전량을 최대화하는 것도 가능한데요. 일종의 ‘디지털 발전소(Digital Power Plant)’ 개념입니다. GE는 이를 통해 연간 6만 7000톤의 석탄 소비를 줄일 수 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총 3%가량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정흔 IT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