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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ech

전기차 시대, 자동차의 얼굴이 바뀐다?

 

여러분은 자동차를 볼 때 어디를 가장 먼저 보게 되나요? 아마 자동차의 인상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면부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꼽을 텐데요. 자동차를 정면에서 보면 헤드라이트 부분이 눈, 그릴 부분이 코나 입으로 연상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자동차의 얼굴로 흔히 생각합니다.

 

자동차의 트렌드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옮겨가면서 핵심 부품이었던 라디에이터 그릴의 역할과 디자인인 바뀌고 있습니다.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모티브뉴스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는데요. 전기차는 별도로 연소나 냉각 과정이 필요 없기 때문에 라디에이터 그릴 공간을 활용해 파격적인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자동차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라디에이터 그릴

 

라디에이터 그릴은 실제로 우리 몸의 코와 유사한 역할을 합니다. 내연기관차는 연료를 연소시키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폭발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동력을 얻기 때문에 엔진에 공기를 공급해야 하고, 뜨거워진 엔진과 라디에이터를 식히기 위해 다시 외부 공기를 필요로 하는데요. 라디에이터 그릴은 공기를 유입하는 통로이자, 외부 물질을 1차로 걸러 파손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존재 자체로 자동차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디자인 요소가 됩니다. BMW의 ‘키드니 그릴’, 범퍼까지 그릴의 범위를 확대한 아우디의 ‘싱글 프레임 그릴’, 기아차의 ‘타이거 노즈 그릴’ 등은 라디에이터 그릴이 기능을 넘어 자동차 제조사의 브랜드 정체성을 나타내는 디자인 요소가 된 것을 보여줍니다.

 

아우디 A7에 적용된 싱글 프레임 그릴 (사진 출처: 아우디 홈페이지)

 

최근 엔진 출력이 높아진 내연기관차는 그릴 크기가 점차 커지고 있는 반면, 전기차는 그릴의 크기가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지고 있습니다. 전기차는 배터리의 전력을 전기모터를 거쳐 바퀴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동력을 얻기 때문에 외부 공기 흡입이 필요한 연소나 냉각 과정이 필요 없는 것이죠. 이 때문에 그릴 역시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또한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연료 보충을 수시로 할 수 없기 때문에 1회 중천 시 주행거리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릴이 막혀 있으면 공기 저항이 줄어 주행거리가 높아지기 때문에 없애기도 합니다. 이 경우 그릴이 있던 공간을 더 다양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실제 많은 전기차들이 그릴 자리에 조형 요소나 엠블럼, 조명 등을 배치하는 등 다채롭게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그릴의 화려한 변신

사진출처: 테슬라 홈페이지

 

테슬라는 ‘안티 그릴’로 엔진이 없는 전기차의 특성을 전면에 보여주고 있는데요. 최근 선보인 모델Y는 앞부분이 꽉 막힌 대신 답답함을 없애기 위해 세로로 날렵해진 전조등을 적용했습니다.

 

아이오닉6 등에 탑재될 현대자동차의 ‘라이팅 그릴’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도 보닛이 앞부분을 덮으면서 그릴을 없앴습니다. 현대자동차는 내년부터 양산하는 전기차 아이오닉6 등의 그릴에 LED 조명을 넣은 ‘라이팅 그릴’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그릴 조명의 패턴과 색으로 자율주행 모드, 충전 모드 등 자동차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진출처: GMC 홈페이지  

 

GMC의 허머EV는 과거의 강인한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허머의 상징이던 수직형 그릴 대신 허머의 알파벳이 들어간 6개의 LED 조명을 그 자리에 넣고, 전면 그릴 양쪽 끝에 헤드램프를 적용했습니다.

 

볼보는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완전히 닫힌 전면 디자인이 돋보이는 첫 전기차 전용 라인 C40 리차지를 공개했습니다. 전기차의 주요 고객이 젊은 층임을 감안하여, 그릴을 없애고 전체적으로 디자인을 단순화해 젊은 감성을 더했다고 밝혔죠.

 

사진출처: 포드 홈페이지

 

포드의 첫 순수 전기 SUV 마하-E 또한 자사의 상징적인 스포츠카인 머스탱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이어받으면서도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닫힌 그릴을 적용하고 머스탱을 상징하는 ‘달리는 말’ 엠블럼을 넣었습니다.

 

내연기관차의 디자인을 계승한 전기차 그릴

사진출처: 메르세데스-벤츠 홈페이지

 

반면 벤츠와 아우디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의 내연기관차와 유사한 형태의 ‘가짜 그릴’을 전기차에 적용했습니다. 아우디 A4, A6에 적용된 ‘싱글 프레임 그릴’은 전기차 e트론에 그대로 남아있으며, 메르세데스-벤츠는 전기차 EQS의 그릴 위치에 검은색 패널을 탑재하고 가운데 브랜드 로고를 넣었습니다.

 

사진출처: BMW 홈페이지

 

BMW 역시 전기차 i4에 기존의 ‘키드니 그릴’보다 가로는 줄고 세로는 길어진 형태의 ‘버티컬 키드니 그릴’을 탑재했습니다. 기존보다 더 커진 그릴엔 센서, 레이더, 카메라 등의 부품이 들어 있습니다.

 

 

기아의 EV6는 현대차의 아이오닉5와 같은 전기차 플랫폼인 ‘E-GMP’를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아이오닉5가 전기차 특유의 장점을 담은 디자인을 선보인다면, 기아 EV6는 내연기관차인 K시리즈의 디자인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전면부의 그릴 또한 없애지 않고 전기차에 맞춰 재해석한 ‘디지털 타이거 마스크’를 적용하여 기존 디자인과의 이질감을 줄였습니다.

 

현대자동차가 2018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한 콘셉트카 ‘르 필 루즈’

 

향후 미래차의 그릴은 어떻게 바뀔까요? 현대차가 지난 2018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발표한 콘셉트카 ‘르 필 루즈(Le Fil Rouge)’가 그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르 필 루즈에는 현대차를 대표하는 캐스캐이딩 그릴이 적용되었지만, 보석 모양의 그릴 패턴이 변경되면서 자동차의 운행 상태를 보여주는데요. 그릴이 외부와 소통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기차의 그릴은 디자인의 변화뿐 아니라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 뉴스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자동차 디자이너는 새로운 캔버스를 쥐게 되었다”며 “수십 년간 자동차의 겉모습을 결정했던 그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술의 진보와 함께 자동차의 디자인도 변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대, 우리는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자동차의 얼굴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