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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의 작품에서 보는 미래 모빌리티 방향성

 

저는 현대트랜시스 시트연구개발본부에서 자동차의 시트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한 가지 요소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최적의 조합을 만드는 방법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용어는 다르지만 모듈, 스트럭쳐, 공용화 등이 해당되죠. 이에 따라 전세계 자동차 OEM 브랜드부터 스타트업까지 최소의 자원을 투입해 최대 효율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미래 모빌리티 방향성에 대해서 고민하던 중 그래픽 아티스트 ‘에셔’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에셔의 작품 중 타일링 또는 쪽매붙임으로 불리는 ‘테셀레이션’을 적용한 작품을 감상하다 문득 요즘 모빌리티 업계 이슈가 떠올랐습니다.

 

반복과 변형, 무한한 가능성의 확장

에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3D 일러스트레이션

 

에셔의 석판화 ‘상대성’ 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세트장의 모티브가 되었는데요. 얼핏 보면 역삼각형 모양으로 이어지는 계단 같지만 자세히 보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상과 실제 세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듯한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킵니다. 작품 속 미지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죠.

 

에셔는 목판화, 회화에 대한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드로잉, 판화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판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디테일한 묘사와 명암을 조절하는 능력이 돋보이는데요.

 

실제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한 이미지를 평면에 자연스럽게 표현해 착시효과를 느낄 수 있죠. 마치 작품 속의 세계가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 모자이크 패턴

 

에셔는 스페인 알함브라 궁전의 모자이크 패턴에서 큰 영감을 얻어 이와 같은 패턴을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보통 사람들 같으면 관광유적지로 그냥 지나쳐 버릴 만한 타일 패턴에서 일생일대의 영감을 얻은 그가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역시 예술적 영감은 벼락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는 열정적인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빈틈없는 아름다움, 테셀레이션 기법

에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

 

에셔의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은 테셀레이션입니다. 그의 작품이 단순히 환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는 것에만 한정되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에셔는 펜로즈의 삼각형 등 수학적인 사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가로서의 독창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테셀레이션’이란, 도형을 이용하여 빈 부분이 없이 각각의 이음새가 한 세트처럼 들어맞게 이어 붙이는 기법입니다. 우리말로는 쪽매맞춤, 쪽 맞춤이라고도 합니다. 얼핏 생각보면 표현하기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어색하지 않게 각 조각을 연결하여 구성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똑같이 반복되는 부분은 거의 없기에 모든 맞물리는 조각들의 관계를 생각하며 구성해야 하죠.

 

Feeling people이 아닌 Thinking people의 가치

에셔는 1953년 한 강의에서 자신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feeling people), 무언가를 생각하도록(thinking people) 만드는 작가라고 했습니다.

 

즉, 작가가 답을 정해두고 관객들에게 의도한 바를 전달하는 수동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보는 사람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주관적 해석으로 작품을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죠. 그렇게 때문의 그의 작품은 한가지 정의로 설명하기 어렵고, 보는 이의 관점에 따른 능동적 해석을 받아들이며 다채로운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부분의 최적화로 전체의 최적화를 만들다

테셀레이션(Tessellation) 방식으로 구성된 제네시스 하우스

 

기본적인 도형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에셔의 작품과 같은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인테리어 업계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모듈가구가 대표적입니다. 각각의 조형성, 활용성이 뛰어남과 동시에 전체가 함께 모였을 때 더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혼자만의 목소리를 크게 내는 단일 제품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조형미보다는 각각의 부분들이 상하좌우 어우러졌을 때의 매칭, 단차감, 소재와 컬러간의 어울림이 강조됩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메가 트렌드 보다는 각각의 개성이 강조되어 점조직화된 매니아적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트렌드가 없다는 것이 트렌드가 되었으며, 모든 산업부문은 다양한 개인의 니즈를 만족시킬 세분화된 전략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에 모빌리티 기업은 보다 본질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핵심 기술의 내제화와 동시에 예측하기 힘든 대외 변수에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그룹의 E-GMP는 분리, 결합, 변형을 반복하기 쉽도록 구성되어 다목적으로 활용 가능합니다. 유사하지만 동일하지 않게 모습을 바꿔 나가는 확장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장,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죠.

 

특히 공간의 제약 없이 시트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어 탑승자의 자동차 이용 습관이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설계가 가능합니다.

 

현대자동차는 E-GMP를 적용시킨 EV를 기반으로 세단 및 SUV 라인업에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후인 2025년까지 12차종을 추가로 양산한다고 밝히며, 총 56만대의 EV 판매물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만일 매 차종마다 새로운 플랫폼을 제작해야 한다면, 25년의 목표치는 불가능할 수도 있죠. 하지만, 범용성, 확장성을 가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면 다양한 차량 개발 컨셉에 맞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앞서 살펴보았던 에셔의 테셀레이션 기법에서 돋보이는 특징을 떠올리게 합니다. 기본적인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양한 요소들이 분리, 결합, 변형을 반복하기 쉽도록 구성되어서 다양한 모빌리티 그레이드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현대∙기아차의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에셔가 작품의 한 조각 패턴의 반복, 변형, 전체와의 어우러짐을 고민했던 것처럼 모빌리티 관점에서는 수천 수만개의 작은 부품들이 모여 고객들의 니즈에 맞는 최적화된 자동차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각 개별 아이템의 치밀한 검토가 수반 되어야합니다. 현재 현대트랜시스는 이중 시트의 최적화를 고민중인데요. 직면한 과제를 현명하게 풀어 나가야할 지혜가 필요한 타이밍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지향점

현 시점의 모빌리티의 개발자들은 한정된 공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가능성과 상상의 문을 열기 위해 고민하는 연구는 에셔의 작품활동이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와 맥을 같이 합니다. 과거 에셔의 고민, 현 시대의 개발자들의 연구들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켜켜이 쌓여 미래에 펼쳐질 더 놀라운 세상이 기대가 됩니다.

 

동탄 연구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마지막 컨텐츠의 매듭을 짓도록 하겠습니다. 아쉽게도 지난 1년간 함께한 T.크리에이터 2기 활동은 종료되지만, 현 시대의 고민과 Thinking people의 가치를 디자인 속에 담는 연구를 계속하겠습니다. 다가오는 2022년에는 더 재미있고 신선한 구성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주실 3기 여러분들을 기대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에셔의 원작이 궁금하시다면 https://mcescher.com/ 공식사이트를 방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