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마무리하며 1년 간 동고동락한 살과 작별을 고할 겸 헬스장을 찾았습니다. 러닝 머신에 달려 있는 TV를 켜니 인기 예능 프로그램 ‘도시어부’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감질나게도 참치를 잡았다고 놀라는 출연진들의 표정이 클로즈업되며 해당 화가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참치? 우리나라에서 참치가 잡히나?”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경상도 부근에서는 꽤 잡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도 대어를 잡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낚시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죠.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올 때도 있고, 완벽한 계획이나 준비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은 낚시가 취미인 동탄 직장인의 좌충우돌 낚시 여행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초보 낚시꾼의 당찬 포부
초보 낚시꾼인 저는 주꾸미, 갑오징어, 광어, 우럭 등 주로 서해안을 훑어 내려가면서 차근차근 낚시의 묘미를 느끼고 있는데요. 도시어부 속 대어를 보니 딱 1번이라도 짜릿한 손맛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낚시꾼 사촌 동생에게서 거절할 수 없는 연락이 왔습니다.
방송을 보지 않았다면 심드렁했겠지만 이미 눈으로 보고 난 다음이라 안 갈 수가 없었죠. 그렇게 덜컥 예약을 하고 며칠 뒤 그 장소가 포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너무 멀어서 가지 않았겠지만, 이미 돈을 낸 후였죠. 비록 사촌 동생에게 낚여서 출발하게 되었지만, 대어를 낚아오겠다는 포부를 안은 채로 멀고 먼 여행을 떠났습니다.
월척을 위한 여행의 시작
첫날은 숙소에서 쉬고 둘째 날 새벽,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떴습니다. 짐을 정리한 뒤 신선한 새벽 공기 냄새를 맡으며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보물섬을 찾는 해적들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낚시 여행에 동행한 일행 모두 대어를 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선장님의 안내를 듣고 낚시하는 장소로 배는 출발했습니다. 월척의 욕심은 잠시 넣어두고 이동 시간을 이용해 배 안으로 들어가 한숨 잠을 청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멈추고 낚시 스팟에 도착했는데요. 그때부터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낚시는 던져 놓고 기다리는 방식이었는데요. 삼치, 참치, 방어 낚시는 멀리 던지고 열심히 릴을 돌려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한 액션을 취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가 열심히 던지고 감기를 반복했습니다.
처음에는 입질이 오지 않아 ‘이렇게 멀리 왔는데 빈손으로 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점점 팔과 손가락 그리고 손목까지 아파오기 시작했죠. 함께 이번 낚시여행에 동행한 사촌동생을 원망의 눈으로 쳐다봤지만, 고기가 많이 잡힐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사촌동생은 이미 고개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두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질 때쯤 ‘히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의 환호와 같았죠.
그렇게 첫 방어가 잡혔습니다.
삼치와 방어들 사이 눈치 없는 개우럭 등장
이후 곳곳에서 삼치와 방어가 심심찮게 올라왔습니다. ‘나도 곧 잡을 수 있겠지’라는 기대로 계속해서 캐스팅을 한 결과, 드디어 입질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리던 대어가 아닌 개우럭이였죠. 광어나 우럭 낚시를 갔다면 너무나 반가웠겠지만, 먼 포항까지 왔는데 우럭이 썩 반갑지는 않았죠.
어느덧 점심시간은 다가오는데 잡은 건 개우럭 하나라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빅게임을 한다고 포항까지 와서 우럭만 들고 집에 돌아가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죠. 의욕과 달리 바닥에 채비가 뜯기길 몇 번 반복하니 슬슬 지쳐갔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바닥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급하게 선장님을 부르자 모든 일행들이 낚시를 멈추고 제 주변을 둘러섰습니다. 5분 정도를 있는 힘껏 낚싯대를 올리고 내리면서 반복적으로 릴을 풀고 감았죠. 심장이 요동치며 바다의 표면 위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토록 열망하던 대방어의 등장이었습니다.
연구원과 바다, 그리고 장원급제
낚시와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했나요? 긴 씨름 끝에 나타난 건 실한 대방어 한 마리로 이날 장원급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낚시를 그렇게 다녀도 한 번도 못해봤던 장원을 대방어와 함께하니 감동이 두 배였습니다.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한 마리도 못 잡은 일행에게 잡았던 개우럭을 선물했습니다.
이렇게 잡은 대방어는 껍질과 내장만 벗겨 살코기 덩어리 채로 아이스박스에 담아 처갓집으로 향했습니다. 회를 손질하는 와중에도 고기가 나오는 양을 보고 깜짝 놀랐죠. 소고기 덩어리를 연상시키는 비주얼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특히 회를 손질해주시는 분이 횟집에서 사 먹으려면 30만 원어치라고 칭찬하셨죠. 포항에서 수원까지 무려 7시간이나 걸렸지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자연산 대방어의 선물
춥고 힘든 아주 먼 여정이었지만, 선물 같은 자연산 대방어는 이 모든 수고를 싹 잊게 해 주었습니다. 살면서 자연산 대방어를 이렇게 두껍게 먹어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자연산과 횟집에서 먹는 것은 맛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호랑이 굴을 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듯이, 자연산 회의 맛을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꼭 바다낚시를 가보는 것을 강력 추천 드립니다. 그럼 모두 만선하 시고 장원하시길 바라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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