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현대트랜시스 NVH 품질관리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손문정 매니저입니다. 저는 근심과 걱정을 훌훌 털고 새로운 마음으로 리프레쉬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콘텐츠는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운 일상 회복을 기대하며 일기장에 끄적거리듯 제 개인적인 소망을 기록했습니다. 코로나19 종식을 기대하며 편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워너비 트래블러, 세상 집순이가 되다
지난 2019년 10월 제주도를 시작으로 19년 11월 필리핀에서의 첫 스쿠버다이빙, 19년 12월 태국 치앙마이, 2020년 1월 말 싱가포르까지 자체적으로 매달 비행기 타기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을 무렵, 코로나의 서막이 드리웠다.
싱가포르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따뜻한 나라에서 그녀는 왜 목감기에 걸려 돌아왔는지 기침은 멈추지 않았고 서산 1호도 싫었지만, 트랜시스 1호는 정말 되고 싶지 않아 지금보다 더 열심히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하늘길은 모두 막혀버렸고, 워너비 트래블러였던 그녀는 세상 집순이가 된다. 2017년도에 가족과 함께 한 이탈리아/스위스의 기억이 황홀해 부친 환갑 기념 떠나기로 했던 인도로의 두 번째 여행은 역병의 창궐로 무산됐고, 그 사이 모친의 무릎은 고장이 나버렸다.
예약해둔 비행기 표도 두 개나 취소를 했다. 세상을 탐험하지 못하는 대신, 집을 아마존으로 만들겠다고 식물을 들이기 시작한다. 아마존에 살았으면 지구 허파의 반을 날려 먹었을 것처럼 그녀의 손에서 식물들은 죽어 나갔고 현재는 그들도 살고 그녀도 살 수 있는 그 합의점을 찾았다. 이래서 생태계 평형이 존재하나 보다. 역시 글은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맛이다.
여행이 그리워질 때는 캐리어 가방을 본다
창고에 보관 중인 손때 묻은 캐리어와 배낭들을 보고 있으면, 설레는 마음으로 이들을 구매했던 순간부터 캐리어와 함께 한 수많은 여행의 기억이 떠올라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여행의 시작과 끝인 그들은 비록 창고에 보관되어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저 캐리어에 들어가는 만큼만 갖고 훌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여전히 품고 있다.
나의 첫 번째 캐리어는 교환학생을 떠나며 샀던 일명 ‘이민 가방’이다. 에스컬레이터가 없었던 파리의 어느 지하철 환승역에서, 도저히 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내려갈 수 없었던 나는 계단에 가방을 굴렸다. 서러웠지만 짜릿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두 번째는 교환학기 중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며 구매한 8만 원짜리 천 캐리어이다. 이별은 1주일을 만나든 10년을 만나든 가슴이 저릿한 것처럼, 함께했던 3개월이 애틋해 미련이 남아 있었던 걸까? 바퀴가 직진 방향으로 2개밖에 없는데도 버릴 수가 없어 취직한 후에도 한참을 함께 했다.
다음은 신입사원 연수 때 구매한 23인치 캐리어다. 해외 출장 때 클러치 액추에이터를 보관하다보니 파티션에 구멍이 나버렸다. 다른 캐리어는 눈에 밟히는데 이 캐리어는 조만간 중고 마켓에 처분할 예정이다. 그 옆은 캐리어 계의 명품으로 불리는 녀석이다. 네 개의 바퀴가 360도를 돌아간다. 우아하게 캐리어 끌고 다니는 여행을 하려 했으나, 제 성에 못 차 장기 배낭여행을 꿈꾸며 40L 여행용 배낭을 다시 구입하게 되었다. 연인과 함께 손잡고 장기 여행을 다니는 외국인들이 부러웠던 나는 굳이 어깨가 부서져라 미련하게 배낭을 메고 다녔다.
떠나지 않으면 좀이 쑤셨다. (소름 돋게 똑같은 회사는 잘만 다닌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연차와 연휴를 적절히 이용해 일년에 4번씩 해외여행을 떠나곤 했다. 비행기를 못 타면 숨이 막혀 시름시름 앓다가 말라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일까? 새로운 탐험을 기다리며, 일상 회복을 소망하며 나는 두 살을 더 먹었고 나름의 ‘코로나 일상’을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
나는 여행에 진심이었을까?
어렸을 땐, 세상이 궁금해서, 나이를 먹고는 흘러가는 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서 끊임없이 여행을 떠났던 것 같다. 쉬기 위해 떠난 여행이 노동이 된 순간도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여행 중 행복했던 순간은, 공원에 앉아 한낮의 여유를 즐기며 파니니를 베어 먹던 때, 지도 한 장 들고 골목을 헤매다가 모퉁이를 돌았는데 눈부신 햇살에 건물이 반짝반짝 빛났던 순간, 매일 아침 들렀던 카페테리아의 사장이 나를 아는 체해 줄 때, 끌리듯 방문했던 한 작은 마을에서 세상 고요한 밤을 맞았을 때, 친구와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갈랐던 순간 등 어쩌면 내가 일상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2년의 코로나를 겪으며 나는 일상이 소중해졌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떠나야만 여행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당연하던 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을 경험해보는 것, 서산의 교외 카페에서 주말을 온전히 즐기는 것, 친구들을 초대해 서산에서 크리스마스 홈 파티를 여는 것 모두 여행이었다. 기승전 서산은 코로나 건 아니건 많이 아니, 아주 조금 화가 나지만 (‘이제는 정이 들었다’는 건 사실 다 거짓부렁이다. – 지난 포스트 참조) 1950년 배경의 웰컴 투 동막골처럼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따듯했던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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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프라이데이에 새 크림색 캐리어를 구입했다.
영롱했다. 캐리어 반은 채워가고 반은 채워올 생각에 설레었다. 그런데 동시에 식당에서 음식은 잘 시킬 수 있을까? 대중교통은 잘 찾아 탈 수 있을까? 게스트하우스 철제 이층 침대에서 푹 잘 수 있을까? (이건 이미 제주에서 불가함을 확인했다.) 다양한 여행자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로 세상이 계속 궁금한 걸까? 하는 의구심도 생겼다. 참으로 떠나지 않을 온갖 핑계를 열심히도 찾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여행을 준비할 때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서게 된 건 아닌지 이런 고민도 잠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새롭게 구입한 캐리어는 거실에 며칠 전시되다 다시 창고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 그만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합리화가 필요한 건지 정말로 두려워진 건지는, 다시 여행을 떠나봐야 알 것 같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여행의 불확실성이 좋았으니까. ‘위드 코로나’는 1차적으로 좌절됐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여행 준비를 해보려고 한다.
최근 제주도 여행에서 구매한 <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내 취미는 여행준비이지 여행이 아니지 않은가.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는 영영 못 돌아간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비행기도 뜨고 야구장도 열리고 미술관도 북적대지 않겠나. – 중략 - 인생은 어차피 준비만 하다가 끝난다는 말도 있는데, 여행을 못 가면 어떠랴,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우면 그것으로도 큰 위안 아닌가.”
사실 책을 다 읽고 원고를 작성하려던 나의 계획은 실패했지만 오랜만에 독서를 난 역시 본업보단 이런 부업이 너무 즐겁다는 걸 느꼈으니 그것으로 큰 위안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여행에 대한 워밍업을 할 수 있는 책들을 몇 권 추천한다. 아직 나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다음 여행은 좀 더 시간이 걸릴 듯 하니 그전에 함께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1. 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 웃긴데 쓸모 있고, 가벼운데 진지하다.
2. 여행할 땐, 책 (김남희) : 책을 읽다 그곳으로 떠나고 싶게 한다.
3. 베를린 일기 (최민석) : B급 정서, 소설가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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