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 성장과 함께 성숙되고 있는 분야는 바로 ‘가상 사운드 시장’ 입니다. 음향 합성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 사운드는 언젠가 내연기관의 배기음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오늘은 조용한 전기차에 소리를 입히는 ‘가상 사운드의 세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오너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자동차 사운드
강렬한 엔진 사운드와 배기음이 자동차의 상징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팝콘 터지는 듯한 배기 사운드가 스포츠카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우렁차고 낮게 깔리는 8기통 엔진 사운드는 시동만으로도 고성능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시그널과 같았죠.
그러나 이런 사운드가 이제는 추억이 되고 있는데요. 누군가에게는 사운드일 수 있는 자동차의 엔진과 배기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소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도시처럼 자동차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은 소음 역시 유해 배출 가스처럼 환경 법규에 따라 점차 엄격하게 규제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세상이 된 것이죠. 그러나 차 안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오너의 취향에 따라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인데요.
첫 번째는 무음의 추구, 즉 실내를 조용하게 만드는 사운드 엔지니어링인 능동 소음 제거 기술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입니다. 아늑한 실내를 위한 필수 요소인 정숙성을 위해 바깥 소음이 자동차 실내에 전달되지 않도록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는데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은 실내로 유입되는 소리를 마이크로 측정해 이와 정확하게 반대의 소리를 스피커에서 재생하여 상쇄시키는 능동적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액티브 사운드 제네레이터입니다. 소음 규제 때문에 작아진 엔진과 배기 사운드를 실내에서 만끽할 수 있도록 배가해서 들려주는 시스템인데요. 여기에도 두 가지 시스템이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는 실제 엔진 혹은 배기 사운드가 실내로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흡배기 경로를 설계하거나 공명장치를 설계하는 물리적 방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스피커 시스템을 통하여 엔진 사운드를 증폭하거나 미리 프로그래밍된 사운드를 재생하여 스포티한 엔진 및 흡배기 사운드를 실내에서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전기차의 등장과 사운드의 변화
이러한 다양한 자동차 사운드 시스템은 전기차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는데요. 전기차에는 줄여야 할 엔진 사운드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기차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소리를 만들어야 했는데요. 자동차 엔진음이 없다 보니 보행자들이 자동차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늦게 알아채는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안된 장치가 가상 엔진 사운드 시스템(VESS, Virtual Engine Sound System)입니다. 세계적으로 VESS는 법규로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시속 30km 이하에서 75데시벨 이하의 경고음을 내야 하며 전진할 때는 보행자가 알아챌 수 있도록 소리의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VESS는 앞 범퍼 안쪽 혹은 엔진룸에 작은 스피커를 설치하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범퍼 등 차량의 앞쪽 구조물에 가려 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거나, 스피커의 지향성 때문에 방향에 따라서 들리는 가상 사운드의 크기가 차이를 보이는 등 실효성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현대모비스가 2018년에 개발한 VESS는 전기차의 상징과도 같은 밀폐형 라디에이터 그릴을 진동판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가상 엔진 사운드를 넓고 또렷하게 전달할 수 있어 보행자 안전도를 확실하게 향상시켰습니다.
또한 전기차는 엔진이 없기 때문에 실내가 훨씬 조용한데요. 그 대신 노면 소음이나 타이어 공명음, 실내의 잡소리 등 엔진과 배기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던 소리가 오히려 잘 들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크로스오버 SUV의 차체 형상이 전기차에서 더 많이 사용되면서 박스형 실내의 공명음이 더 거슬리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흠음재 등으로 실외 소음을 차단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게 되었고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이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아 EV6에 적용된 e-ASD, 즉 전기차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은 스타일리시, 다이내믹, 사이버 등 세 가지의 가상 사운드를 제공하는데요. 고성능 엔진 차의 분위기를 원한다면 다이내믹 모드, 강력하지만 매끄러운 전기차의 감성을 원한다면 스타일리시, 강렬함을 원한다면 사이버 모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사운드를 위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노력
제네시스 GV60은 세 가지 사운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실제 GV70의 엔진 사운드를 샘플링한 G-Engine 사운드, 실제 전기모터의 소리를 다듬고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한 E-Motor 사운드, 미래적 분위기를 위해 신시사이저 음원을 사용한 Futuristic 사운드 등이 있습니다.
각각의 개성이 있는 사운드는 무엇보다 제네시스 특유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음향으로 극대화하는데 주안점을 두어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우디도 e-트론 GT를 가장 잘 표현하는 천연 음향을 찾기 위해 많은 엔지니어들이 수많은 노력을 했으나 쉽게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정원에 놓여 있던 길이 3m, 지름 8m의 파이프를 발견했는데요. 한쪽 끝에 선풍기를 고정하고 반대쪽 끝에서 들어본 소리는 은은하면서도 매우 깊은 사운드였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복잡한 작곡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바로 e-트론 Gt의 e-사운드입니다.
BMW는 순수 전기차에 적용할 가상 엔진음 ‘BMW 아이코닉사운드 일렉트릭’을 영화 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BMW 아이코닉사운드 일렉트릭은 주행 상태에 따라 다른 소리를 전달하며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 환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데요. 이 사운드는 BMW i4와 iX부터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기차 가상 사운드의 최종 작곡가는 바로 전기차를 운전하는 바로 여러분들이 아닐까요? 가속 페달을 밟는 깊이와 속도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입력될 때, 드라이브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운드가 완성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상 사운드는 전혀 가상이 아니라, 오히려 운전자가 더 깊게 참여하는 연결의 세계인 셈입니다.
글 나윤석 자동차 칼럼니스트
'Te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이동수단이 쏟아진다, 움직이는 생활공간 ‘PBV’이란? (0) | 2022.09.26 |
---|---|
‘UX 스튜디오 서울’에서 만난 미래 PBV 인테리어 비전 (0) | 2022.09.23 |
다 쓴 배터리도 다시 보자!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열풍 (0) | 2022.09.16 |
전기차 주행거리 500km 시대, 배터리 수명과 안전은? (0) | 2022.09.15 |
디지털 트윈 기술의 현재 그리고 미래 (0) | 2022.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