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2032년까지 자국 내 판매되는 신차의 67%를 전기차로 채우도록 하는 규제안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이 2035년까지 올해 전망치의 5배 수준인 815조원 규모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전기차뿐 아니라 스마트폰, 전자기기, 로봇, 드론 등이 모두 배터리를 동력원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전체 배터리 시장의 규모의 성장은 더욱 커질 텐데요. 특히 2030년까지는 리튬이온 배터리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리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전기차 시대의 ‘하얀 석유’, 리튬
리튬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벼운 금속으로 반응속도가 높고, 전류 흐름의 속도를 높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주행 가능 거리가 500km 이상인 전기차 배터리에 주로 쓰이고 있으며, 리튬 함유량에 따라 배터리 용량이 결정될 정도죠.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는 배터리용 리튬 수요량이 올해 67만 5,000톤에서 2030년 273만 9,000톤으로 4배 정도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늘어나는 수요에도 불구하고 리튬 확보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요. 리튬 생산이 중국, 남미, 호주 등 일부 지역으로 제한된 것은 물론 미국-중국의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유통망이 불안정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연합의 핵심원자재법(CRMA)은 리튬 활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전 세계 리튬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전기차 생산국은 중국에 배터리 원료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데요. IRA은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 가공한 원료를 40% 이상 사용한 배터리에 대해서만 전기차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규정입니다.
여기에 에너지자국우선주의 현상도 점차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약 60%는 ‘리튬 삼각지대’로 불리는 칠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에 몰려 있는데요. 리튬의 가치를 알아챈 이들이 잇달아 ‘국유화’를 선언하며 빗장을 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튬 보유국들은 리튬을 ‘전략 광물’로 지정하고 국영기업을 세워 관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리튬의 가격은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대비 11배 상승했습니다. 배터리가 전기차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까지 높아지면서 전기차 업체들의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들어올 수밖에 없게 되었죠.
리튬 전쟁에 뛰어든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
배터리 소재 공급망 불안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핵심 광물 소재 확보를 위한 잰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리튬 정제에 이어 채굴 사업을 시작할 방침입니다. 테슬라는 올해 말 미국 텍사스에 리튬 정제소를 설립해 시범 운영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이와 함께 캐나다 리튬 채굴 업체 ‘시그마리튬’ 인수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는 만큼 리튬 생산의 전 영역에 뛰어드는 셈입니다.
GM은 캐나다 리튬 광산업체 ‘리튬아메리카스’에 6억 5,000만 달러(약 8,5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투자했습니다, 이를 통해 GM은 연간 100만 대 전기차 생산이 가능한 리튬을 확보하게 되었는데요. 포드는 지난해 6월 호주 광산업체 ‘라이언타운’과 계약해 내년부터 리튬을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토요타는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현에 전기차용 리튬 가공 공장을 준공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염호에서 정제한 탄산리튬을 수입해 수산화리튬으로 가공하여 토요타의 전기차 전략에 맞춰 공급할 예정입니다.
또한 스텔란티스는 최근 호주 자원업체인 벌컨에너지에 5,000만 유로(약 711억 원)을 투자하고, 2026년부터 5년간 전기차 배터리용 리튬을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벌컨에너지는 폭스바겐, 르노 등 완성차 업체와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제조업체 등과도 리튬 공급 계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배터리 회사와 분업하는 체제를 유지해왔는데요. 최근에는 배터리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현대차그룹은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합작 배터리 공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인도네시아 광물기업 아다로미네랄과 알루미늄의 조달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는 한편 호주 희토류 기업인 아라푸라리소시스와 연 1,500톤의 희토류 산화물을 직접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리튬 자급화에 나선 국내 소재 배터리 기업들
리튬 경쟁이 치열해지자 국내 기업들도 직접 리튬 생산과 가공에 나섰습니다. 포스코홀딩스는 아르헨티나 리튬염호와 호주 필바라미네랄스의 리튬광산 지분을 인수해 안정적인 리튬 원료 공급처를 확보했습니다.
포스코홀딩스는 아르헨티나 옴브레 소금호수 근처에 연산 2만 5,000톤 규모 수산화리튬 생산 공장을 짓고 있으며, 호주 필바라미네랄스와 합작사인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을 설립하고 광양에 공장을 건설 중인데요. 이를 통해 2030년까지 리튬 30만 톤을 생산, 판매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SK온은 작년 10월 호주 자원 개발 업체 레이크리소스의 지분 10%를 사들이고 내년부터 10년간 레이크리소스에서 리튬 23만 톤을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또한 작년 11월에는 글로벌 자원 기업 칠레 SQM과 향후 5년간 리튬 5만 7,000톤을 공급받는 계약도 체결했습니다.
LG화학은 미국 광산업체 피드몬트리튬에 959억 원을 투자해 지분 5.7%를 확보하고, 리튬정광 20만 톤을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도 미국 자원 기업 컴퍼스미네랄과 2025년부터 6년간 컴퍼스미네랄이 연간 생산하는 탄산리튬 약 1만 1,000톤의 40%를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LG에너지솔루션을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호주 시라, 캐나다 스노레이크 등과 각각 천연흑연, 수산화리튬 공급에 대한 MOU를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리튬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전기차 수출 규모는 전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리튬을 비롯한 전기차용 배터리 핵심 광물의 안정적인 수급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많은 국내 기업들이 리튬 자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공급망 다각화가 절실한 실정입니다. 기업과 정부가 협력하여 해외 광산 개발에 투자를 확대하고, 적극적인 자원 외교를 통해 공급망을 확대해야 합니다. 전기차 시대, 리튬을 확보하는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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