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자동차의 품질이 엔진 등 운전 성능을 좌우하는 기계 중심이었다면, 미래에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SDV, Software defined Vehicle)’로 발전될 전망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1월 3일 전동화와 SDV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자율주행 등 신사업 현실화를 추진하는 내용을 담은 신년 경영 구상을 발표했는데요. 특히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SDV로 대전환해 새로운 스마트 모빌리티 시대를 열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소프트웨어 기술 내재화하는 현대차그룹
이날 신년회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연구개발을 비롯한 회사 전반의 시스템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하여 완벽한 SDV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할 것을 주문했는데요.
뿐만 아니라 2025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차종에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Over-the-Air)를 기본적으로 적용하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구독 등 개인화된 서비스와 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통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죠.
이보다 앞선 지난 10월에는 현대차그룹 유튜브 채널에서 ‘소프트웨어로 모빌리티의 미래를 열다(Unlock the Software Age)’ 행사를 열고 SDV를 향한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이를 위해 차세대 공용 플랫폼과 통합 제어기를 자체 개발해 차량에 적용하고, 통합 제어기에 최적화된 커넥티드 카 운영체제(ccOS, Connected Car Operating System)를 개발해 차량의 성능을 강화하는 한편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자동차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생성되는 데이터를 결합, 가공하여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 구축 계획도 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소프트웨어센터를 설립하여 다양한 모빌리티 디바이스와 서비스를 연결하는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인력, 조직에 대한 투자도 강화하여 내부 인재 양성은 물론 글로벌 권역에서 소프트웨어 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해 조직을 확대하고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죠. 여기에 2030년까지 총 18조 원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의지는 성과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차량용 네트워크·통신·보안·소프트웨어 분야의 관련 기술을 내재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2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산업 유공 포상’ 단체 부문 장관상과 개인 부분 협회장상을, ‘2022 대한민국 기술대상’을 수상했습니다.
9월에는 유무선 통합 제어기인 CCU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미국 오토모티브뉴스가 주관하는 페이스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소프트웨어 강화 전략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도 소프트웨어 역량 확보에 주력하며 미래 먹거리 공략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완성도 있는 SDV 기술력을 자랑하는 업체는 테슬라입니다. 테슬라는 차량 OS와 핵심 반도체를 직접 설계해서 사용하는데요. OTA를 통해 차량 기능을 개선하고 예기치 않은 결함이나 오류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역량 덕분에 테슬라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도 불구하고 높은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폭스바겐은 2021년 ‘뉴 오토’ 전략을 공개하고, 소프트웨어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SSP(Scalable Systems Platform)’에 맞춰 운영체제 VW.OS뿐만 아니라 전기·전자 아키텍처도 바꿔 차량의 모든 기능을 중앙에서 제어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2026년부터는 이를 활용해 본격적으로 ‘MaaS(Mobility as a Service, 통합이동서비스)’ 사업으로 수익을 내겠다는 전략입니다.
폭스바겐은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를 위해 자회사인 ‘카리아드(CARIAS)’를 설립했는데요. 여기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 5,000명이고, 그룹 전체와 협력사를 포함하면 2만 명 정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통합 OS와 전기·전자 아키텍처, SSP 개발에 투입되고 있습니다.
GM은 통합 소프트웨어 플랫폼 얼티파이(Ultifi)를 2023년부터 차량에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얼티파이는 GM의 진화형 아키텍처인 VIP(Vehicle Intelligence Platform)을 기반으로 하는데요. GM 차량 소유자는 얼티파이를 통해 클릭 한 번으로 차량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수 있고, 자율주행 운전자 지원 기능인 슈퍼 크루즈 같은 서비스를 구독할 수 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내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7,000명을 투입해 자체 운영체제인 MB.OS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시스템과 운영체제는 엔비디아와 협업하되, 따로 독자적인 OS를 개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벤츠는 이와 함께 전기·전자 아키텍처도 함께 개발하고 있습니다. 완성된 MB.OS와 아키텍처는 2024년 벤츠 신차에 탑재될 예정입니다.
도요타는 ‘우븐 플래닛’이라는 계열사를 통해 ‘아린(Arene) OS’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하고 2025년부터 전 차종에 적용할 계획입니다. 또한 이 회사를 통해 차량용 신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데요. 향후 도요타 전체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1만 8,000명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바퀴 달린 스마트폰, 스마트 모빌리티가 여는 세상
그렇다면 완성차 기업들이 차량용 소프트웨어 시장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소프트웨어가 기존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소프트웨어는 전기차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율주행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데요. 또한 자동차 산업의 신규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완성차 업체의 매출이 자동차 판매와 AS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소프트웨어의 매출은 훨씬 다양한 형태로 이뤄집니다. 플랫폼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거나 구독 형태로 제공할 수도 있죠. 플랫폼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는 다양한 형태의 상품으로 만들 수도 있죠.
이 때문에 UBS는 “2030년이면 차량용 소프트웨어의 매출이 전 세계 자동차 판매 매출액을 앞지를 가능성이 있다”라는 예측을 내놓았고, 미국의 리서치 기업 룩스 리서치는 “차량 1대당 비용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0년대에는 20%였던 것이 2030년에는 50%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의 일상이 혁신적으로 바뀐 것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자동차 산업에서의 변화는 그보다 더 오래 걸리고, 과정은 더 복잡하겠지만 SDV을 통해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습니다. SDV 시대, 보다 빠르고 완벽하게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추는 기업이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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