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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진화하는 자동차 시트 커버링, What's next?

‘이왕이면 다홍치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즉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그 중에서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의 심리가 들어 있는 속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제조업 기술력의 상향 평준화 및 시각미디어가 세상을 장악함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기술력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왠지 모르게 처음 보았을 때 딱! 좋아 보이는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첫인상에 마음이 끌려가게 됩니다.

 

현대트랜시스에서 양산 개발한 GV80 시트

사람의 다양한 감각기관중 시각이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은 전체 정보 약 80%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애석하게도 즉각적입니다. 사납고 무서워 보이는 동물이 보이면 곧바로 온 힘을 다해 도망쳐야 살 수 있었던 선조들로부터 내려온 시각 정보의 힘은 멋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미국의 건축가, 작가이자 발명가였던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매진할 때, 나는 아름다움 따위를 절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찾아낸 해답이 아름답지 않으면, 나는 뭔가 잘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트를 매력만점 다홍치마로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커버링이라 쓰고, 시트의 옷이라 읽는다 

시트 커버링에 들어가는 퀄팅 재단물을 제작하는 모습

시트는 프레임, 스프링, 패드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천과 비닐, 레자(인조 가죽), 가죽 등 시트의 겉을 커버링(커버)라고 합니다. 시트 커버링은 소위 시트의 ‘옷’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시트를 사람에 빗대어보면, 시트 프레임은 사람의 뼈, 각종 힌지 구조는 사람의 연골, 관절이 될 것이고 스펀지 폼 패드는 사람의 지방, 살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아무리 멋진 몸매를 가졌다 할지라도 여기저기 구겨지고, 냄새나는 옷을 입고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의 매력점수는 몇 점이나 될 수 있을까요. 이번 기회에 커버링의 주요 소재인 가죽 개발의 트랜드 변화를 간략하고 쉽게 설명드릴게요.

 

아무것도 없던 시트 쿠션을 막대기로 팡팡 두드리자 보이지 않던 먼지가 무섭게 올라오는 짧은 영상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시무시한 먼지가 잠들어 있을 것 같은 패브릭 시트에 대한 공포감을 만들었던 영상의 인기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시트분야에서 패브릭 시트는 가죽 대비 가벼움과 더불어 다양한 컬러와 무궁무진한 텍스쳐를 적용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사랑받지 못한 것이 아픈 현실입니다. 더러움이 묻으면 물티슈로도 바로 쓱 닦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고급스러움이 더 느껴지는 가죽시트가 (천연/인조를 모두 통칭함) 국내 소비자의 선택을 더 받았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자연스레 진화를 거듭해오고 있습니다.

피부가 느끼는 섬세한 감각, haptic

12년 전 인기를 끌었던 ‘햅틱폰’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된 단어 햅틱(haptic). 전자기기에서의 햅틱이 손에 느껴지는 감성에 집중해야 한다면 자동차 시트에서의 햅틱은 사용자가 온몸으로 느끼는 감성에 맞추어 개발되어야 합니다. 공중부양 기술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적어도 차를 타고 내릴 때까지 사람의 몸은 일정 부분 가죽시트와 맞닿아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국소 영역을 터치하는 휴대폰 제품과는 다르게 시트는 착좌면이 너무 딱딱하지도, 물렁물렁하지도 않으며, 적당한 탄성과 밀도감이 느껴지고, 때로는 건조하지 않고 살결과 같이 촉촉한 느낌이 느껴지도록 요구되기도 합니다.

 

각 패턴들을 봉제하는 작업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이러한 요구 수준은 자동차 개발 컨셉 (판매지역, 브랜드 특성, 차량 그레이드 등)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좋은 햅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1 + 1 = 2와 같은 수학 공식같이 딱 떨어질 수 있는 정답이란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죽이 부드럽고 촉촉할수록 내구성 (혹한/혹서, 직사광선, 습기, 주름, 얼룩 등)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강한 내구를 위하여는 코팅과 같은 후공정이 필수적이지만 이러한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 천연가죽 특유의 장점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죠. 이 까다로운 접점에서 천연가죽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고 내구성은 끌어올린 가죽을 개발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그대의 이름은 퀼팅(Quilting)

퀄팅 디자인으로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GV80 콘셉트

최근 가죽시트의 퀼팅은 고급차종을 중심으로 더욱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가로, 세로, 수직 위주의 단조로운 패턴에서 벗어나 자동차 내/외장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특색있는 패턴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패턴의 형상으로 기본, 상위옵션의 차이를 주기 위해 라인 하나하나를 고민하기도 하죠. 심미적인 요소 외에도 퀼팅은 그 자체로 기능적 역할도 합니다. 봉제사가 스티치라인을 만들며 퀼팅 형상을 구현하는데 가죽패턴 1판을 봉제사가 잡아주며 가죽의 들뜸 및 주름을 완화해주기도 합니다. 또한 퀼팅 형상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볼륨감으로 인해 시트가 더욱 풍성한 볼륨감을 느끼게 해주어 고급스럽다, 안락하다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전달해줍니다.

천연가죽, 변화하거나 사라지거나 

현대트랜시스 개발, 천연 피자마 오일 활용 폼패드

패션업계에서는 살아있는 동물에서 유래한 소재인 가죽, 털(毛) 등의 부산물을 이용한 제품개발에서 탈피하려는 시도가 다각도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동물보호 혹은 제조과정의 이슈 등의 마케팅 요소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죽의 경우, 천연 가죽으로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특수 염색, 후처리 공법을 비롯하여 다양한 시도를 하며 비건(vegan)레더/폭스(faux)레더 등의 이름으로 더욱 다채로운 모습을 뽐내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인조가죽 사용은 천연가죽 대비 자재의 수급 및 품질 관리, 수익성 측면에서도 기업에 긍정적 효과를 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실례로 글로벌 브랜드 닥터마틴은 비건레더를 사용한 제품판매로 인해 19년도 영업이익이 70%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유럽의 경우 동물의 가죽을 얻을 목적만으로는 소를 도축하지 않고 육류나 다른 목적으로 소가 도축된 후 ‘남는 가죽’을 가공하여 천연가죽 제품으로 만드는 프로세스가 보편화 되고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시트 커버링을 만들기 위해서 잘려져 나간 자투리 가죽을 활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재생 가죽을 만들기도 합니다. 

쓰레기라는 개념 자체를 버리자 

기하학적인 패턴의 현대트랜시스 제작, 2세대 자율주행 시트

1991년 발표한 하노버 원칙 (The Hannover Principles)의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쓰레기라는 개념 자체를 버리자” 입니다. 쓰레기를 덜 발생하고 덜 버리고 재활용하자는 개념이 아닌, 디자인 단계부터 쓰레기라는 개념을 아예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끝없는 우주 속 작은 지구별에서 ‘나’ 만을 생각했던 이기적인 전략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너, 나, 우리를 넘어 사람이 아닌 동식물, 또는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다음 세대까지 생각하는 제품 개발 전략이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새로운 시도와 접근으로 ‘what’s next’를 앞서 연구하기 위해 각 부문에서 연구하고 있는 이 시기에 100년 후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날 운송수단의 시트는 어떤 옷을 입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장지혜 크리에이터
사진 HMG저널, 셔터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