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미래차로 진화하고 있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이제는 더욱 넓은 의미의 ‘모빌리티 디바이스’라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는데요.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모빌리티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확장되는 것은 또 있습니다. 대도시의 교통 수요가 높아지면서 자동차가 2차원 지면을 사용하는 운송수단에서 3차원 공간으로 이동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기 때문인데요. 특히 팬데믹 사태를 거치면서 급증한 택배 서비스 등 새로운 모빌리티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복잡한 도심 속 모빌리티의 새로운 대안
교통 시스템이 그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대도시를 생각해 보셨나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다양합니다. 가장 고전적인 대책은 비싼 주차료와 도심 혼잡 통행료 징수 등을 통해 ‘도시에서 가장 비싼 자원은 면적’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주지시키는 것입니다.
개인 차량의 도심 진입을 억제하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제공해야 하는데요. 먼저 대중교통 시스템의 확충, 차량 공유 서비스 등 새로운 플랫폼과 개인 차량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공유 모빌리티 플랫폼인 라이드 헤일링 서비스 등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도시 교통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능형 교통 체계인C-ITS(Cooperative-Intelligent Transport Systems) 등 활용해 고효율 교통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우버나 현대차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UAM(도심항공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장애물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에서 저공비행을 하는 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착륙장에서 수송할 수 있는 인원도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날씨에 따라서 하늘을 나는 교통수단 시스템 자체가 전부 멈춰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UAM은 획기적이며, 다양한 모빌리티 디바이스를 출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항공산업의 거대 자본이 이러한 UAM 시장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강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도심의 새로운 모빌리티 디바이스에 UAM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더 당연한 것을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표면을 중심으로 정반대에 있는 또 다른 3차원의 세계, 바로 지하 세계입니다.
스마트 모빌리티의 최첨병이 될 지하 터널
지하차도와 터널, 지하철 등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지하 공간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왜 UAM에 열광하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입니다. 사실 항공은 장거리, 지하는 도심을 대상으로 특화해 발전해 왔는데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UAM 대비 지하 모빌리티 솔루션은 현재의 기술을 고도화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만 지하 모빌리티의 가장 큰 진입 장벽은 높은 건설 비용인데요. 모빌리티 디바이스의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면 건설 비용은 지금의 몇 분의 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지하 터널의 첫 번째 문제는 안전 대책입니다. 터널 내 교통사고는 사고 처리가 어려우며, 2차 사고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에 승객들의 안전한 대피 경로를 확보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하 터널이라는 제한된 공간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는데요. 부분 자율 주행이 고속도로와 같은 제한 상황에서 더 빠르게 적용되는 것처럼, 차선 변경 등 주변 변수가 작은 모빌리티 터널에서는 훨씬 높은 수준으로 구현이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지하 터널은 지능형 교통 체계의 핵심인 커넥티드 카의 V2X 기술 구현에도 유리합니다. 셀룰러 네트워크 기반의 C-V2X를 사용하지 않아도 근거리 전용 무선 통신 기술(DSRC) 기반의 WAVE(차량용 무선 통신 프로토콜)만으로도 충분히 차량 간의 정보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폐쇄 공간인 터널은 해킹 등 외부 위험에도 안전하며, 자율 주행 도로를 구축하기 단순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WAVE 기반의 V2X 모듈은 기존 차량에 탑재된 ADAS 능동 주행 보조 장비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비교적 쉽다는 실질적 장점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으로부터 승객을 보호하는 환경 및 보건 대책입니다. 물론 전기차를 사용하거나 내연기관 차량도 전동 플랫폼에 얹어서 이동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매연의 문제는 원천적으로 해결됩니다.
2차원을 벗어나 3차원 공간으로 재탄생
앞선 지하터널의 장점은 터널의 크기를 지금보다 훨씬 작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안전을 위한 여유 공간을 최소화하고, 현재의 강제 환기 시스템 설비와 공간을 절약할 수 있죠. 또한 그만큼 작아진 터널은 토목 건축 비용 절감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미 존재하는 지하 터널과 도로들을 스마트 모빌리티에 맞게 개조하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효율과 안전도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수도권에서는 다양한 터널과 지하 도로가 계획 중인 만큼 스마트 하이웨이화를 고려한 설계가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상의 라스트 마일 모빌리티와 공중의 택배 드론처럼 지하에도 특화된 딜리버리 모빌리티 시스템을 구성할 수도 있는데요.
우리는 이미 압축공기를 이용해 실린더 안의 서류나 작은 물건을 전달하는 튜브 시스템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지하의 전력선이나 통신선로를 단순 매립하는 대신 전용 터널에 내장하는 공동구 시스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새로운 모빌리티 기술에 적용하면 소형 모빌리티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언더그라운드 딜리버리 시스템을 구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토요타가 CES 2020에서 공개한 우븐 시티(Wooven City) 프로젝트의 지하 인프라에도 일정 수준 고려되었습니다.
지하 모빌리티 솔루션 개발에 가장 적극적인 회사는 테슬라 계열사인 보링 컴퍼니(The Boring Company)입니다.
보링 컴퍼니는 CES 2022에서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들을 지하로 연결하는 LVCC 루프(Las Vegas Convention Center Loop)를 통해 도보로 45분 걸리는 컨벤션 센터 사이의 거리를 단 3분 만에 주파하는 경험을 일반인에게 제공했습니다.
아직은 운전자가 조종하고 시속 55km의 비교적 낮은 속도로 운행하는 수준이지만 앞으로 보링 컴퍼니는 LVCC 루프를 포함해 라스베이거스 공항과 리조트, 시내 등 51개 스테이션을 연결하는 47km 길이의 베가스 루프(Vegas Loop)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항공 모빌리티와 경쟁하는 터널 모빌리티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UAM이 지하 터널의 영역이었던 도심 모빌리티를 침범한 것이라면 반대의 계획도 추진되고 있는데요. 진공에 가까운 터널 안을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주파하여 비행기보다 빠르고 많은 인원을 이동시킬 수 있는 하이퍼 루프(Hyper Loop)가 그것입니다.
도심에서는 지하 터널을 이용하지만 외곽 지역에서는 지면의 튜브 형태로 제작될 수도 있어 건설 비용을 최적화할 수 있고,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전천후 초고속 운송수단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지면을 가운데에 놓고 경쟁하는 항공 모빌리티와 지하 모빌리티 누가 우세할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미래의 모빌리티 세상은 공간에 제약되지 않는 지능형 시스템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글 나윤석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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