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성과 타당성. 세상 모든 대량 생산 소비재들이 갖춰야 할 특성입니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기능과 가격이어야 많이 팔리고, 그만큼 많이 생산해야 기업의 이윤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양산 자동차 브랜드입니다. 보편적인 제품과 소비가 타당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죠.
현대차가 생산하는 수많은 모델 중, 가장 보편타당한 제품은 아마 아반떼일 겁니다. 넓은 실내, 적당한 성능, 뛰어난 연비, 불호 없는 디자인, 합리적인 가격까지 갖춰 누구나 좋아하는 차종입니다. 아반떼는 7세대까지 진화하면서 꾸준하게 소비자들의 취향과 소비 트렌드 변화에 대응했고, 이제는 국민 모두가 신뢰하는 자동차가 됐습니다. 물론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판매량도 굉장히 높죠. 아반떼는 현대차 역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종입니다. 하지만 아반떼에 ‘N’ 로고가 붙으면 그 보편타당함에 특별함이 더해집니다.
착실한 고성능 드레스업
아반떼는 차체 곳곳에 직선과 에지를 휘둘렀습니다. 헤드램프도 날카롭고 라디에이터 그릴마저 ‘이렇게 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크고 과격하죠. 준중형 세단으로는 꽤 공격적이고 과격한 디자인입니다. 아반떼 N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차체 곳곳에 보이는 N 로고, 레드 컬러로 포인트를 준 스키드 플레이트 등과 어우러진 차체 디자인은 ‘아반떼 N을 만들기 위해 일반 아반떼를 이렇게 디자인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앙칼지게 멋스럽습니다.
여기 더해 블랙 엠블럼, 리어 스포일러, 대형 배기 파이프, 사이드 실 몰딩, 19인치 광폭 타이어 등 고성능 퍼포먼스 세단이 마땅히 갖춰야 할 드레스업 패키지를 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패키지 덕분에 ‘이 차는 그냥 아반떼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듯 확실히 차별화를 꾀하죠.
물론 겉모습만 차별화한 것은 아닙니다. 서스펜션이 확실히 튼튼합니다. 차에 타기 전 지붕을 잡고 흔들어보면 보통 세단들은 머리채를 잡힌 사람처럼 차체가 뒤뚱거립니다. 하지만 아반떼 N은 두꺼운 목을 가진 복서처럼 굳건하게 버티고 있죠. 이런 단단한 하체 세팅은 달리는 맛을 확실히 더해줍니다.
분위기를 압도하는 버킷 시트
실내는 완전히 다른 차 같습니다. 버킷 시트만으로도 이 차는 스포츠 감성을 오롯이 품고 있습니다. 부끄러울 정도로 허리를 꽉 감싸주고 어깨도 든든하게 잡아주죠. 허벅지부터 어깨까지 버킷에 폭 감싸지니 안정감과 편안함도 느껴집니다. 버킷 시트의 목적은 운전자의 몸이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몸을 옥죄는 것인데, 아반떼 N의 버킷 시트는 불편함보다는 고성능 모델을 타고 있다는 충족감이 더 큽니다. 버킷 시트지만 쿠션이 적당히 있고 열선도 있거든요.
N을 상징하는 하늘색 스티치가 멋스러운 운전대, 양쪽 스포크에 달린 큼지막한 N 버튼과 붉은색의 NGS 버튼도 고성능 모델임을 유감없이 내비칩니다. 클러스터도 N 전용이고 모니터에도 N 모델에 특화된 기능이 더해졌습니다.
높은 차체 강성과 퍼포먼스 시스템
고성능 모델을 시승하기 전에는 심장박동이 약간 빨라집니다. 자동차 제조사는 스포츠 모델을 기획할 때부터 오너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기 위해 모든 요소를 점검하죠. 바퀴가 구르기 시작하면 이 차의 특성이 조금씩 느껴집니다. 스티어링이 적당히 무겁고, 바퀴가 노면을 누르는 느낌이 단단합니다. 노면의 자글자글한 느낌이 조금 느껴지지만, 충격은 적당히 눌러주는 고급스러운 서스펜션 세팅입니다.
올림픽대로를 타고 팔당대교를 건너 6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향하는 코스. 양수리를 지나 남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달립니다. 양평시내에서 양평교를 지나 다시 남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오는 드라이브 코스는 아마 100번도 더 달렸을 것 같네요. 적당히 굴곡져 차체 좌우 움직임과 밸런스를 느끼기에 좋고, 중간중간 속도를 낼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곳이 무엇보다 좋은 건 풍경입니다. 녹음이 짙게 우거진 산세 사이로 파랑이 일렁이는 거대한 물줄기는 그야말로 장관이죠. 형형색색의 가을이 내려앉은 팔당과 양평은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빙 코스 중 하나일 겁니다. 그르렁거리는 배기음을 듣고 있으니 달리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합니다. 어서 빨리 가속페달을 밟아달라며 치근대죠. 몸을 버킷 시트에 파묻게 만드는 폭발적인 가속을 보면 터보 엔진이 이렇게 빠르게 반응하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높은 토크(40.0kg·m)가 앞바퀴에 쏟아져 들어가면 으레 휠슬립이나 토크 스티어 등의 불안정한 움직임이 조금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아반떼 N은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디퍼렌셜에서 동력손실을 줄이면서 높은 그립을 낼 수 있도록 하죠.
차가 높은 그립력을 지녔다는 게 확인되니, 뱃심이 생기면서 오른발에 힘이 더 들어갑니다. 꽤 빠른 속도에서도 안정감을 꾸준히 유지하네요. 한편에서는 고속에서 더 안정감이 더 높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차는 고속 대응 및 트랙 주행을 대비해 다양한 보강을 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서스펜션을 강화했고, 뒷자리에는 강철 스티프 바를 더했습니다. 엔진룸엔 경주차에서 사용하는 스트럿 링을 더해 서스펜션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차체 강성을 높였습니다.
주행하는 내내 느낄 수 있는 차체 강성은 어느 속도와 코너에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줍니다. 믿음의 보상은 즐거움과 재미입니다. 특히 코너 앞에서 속도를 줄였다가 코너 탈출 후 다시 가속하는 상황에서의 느낌이 상당하네요. 강력한 브레이크 시스템과 쏠림이 적은 차체 반응, 높은 노면 그립력과 빠른 가속, 가속 후 리어 추종성까지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쉽게 연결됩니다.
퍼포먼스 주행이 쉽게 편하게 느껴지는 건 여러 주행 시스템이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레브 매칭이 다운 쉬프트에서 변속 충격을 줄이면서 빠른 재가속을 만들고, N 파워 쉬프트가 가속 시 엔진 토크를 최대로 끌어올려 힘 있게 밀어줍니다. 주행 중 빠른 가속이 필요할 땐 NGS 버튼을 누르면 20초간 엔진과 변속기의 최대 성능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아반떼 N을 특별하게 만드는 습식 8단 DCT
사실 가속과 관련된 퍼포먼스 시스템은 대부분 변속기에서 제어합니다. 엔진이 만든 출력과 토크는 모두 변속기를 통해 바퀴로 전달됩니다. 특히 아반떼 N처럼 주행성능에 포커스를 맞춘 고성능 모델의 경우, 변속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현대차는 아반떼 N에 아주 특별한 변속기를 넣었습니다. 현대트랜시스의 습식 8단 DCT(듀얼클러치 변속기)입니다.
클러치가 2개라는 건 그만큼 변속이 빠르다는 뜻입니다. 빠른 변속은 그만큼 동력손실을 줄이고 빠르게 가속할 수 있게 해주죠. 8단으로 다단화하면 엔진을 더욱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고, 엔진 회전수를 낮춰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단화 듀얼클러치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바로 냉각과 내구성입니다. 현대트랜시스는 이를 습식으로 해결했습니다.
DCT는 건식과 습식으로 나뉩니다. 건식은 말 그대로 외부 공기만으로 냉각하는 방식이고, 습식은 오일로 열을 순환시킵니다. 습식은 쉽게 말해 클러치를 오일통에 넣고 오일을 계속 순환시키면서 냉각하는 방식이죠. 클러치가 맞물리면 마찰열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습식은 오일이 순환하면서 변속기의 온도를 제어합니다.
결과적으로 습식 DCT는 냉각성능을 높이면서 구동효율과 내구성까지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높은 토크를 내는 엔진일수록 변속기 클러치에 부담이 가기 마련인데, 현대트랜시스의 습식 DCT는 이런 냉각 구조 덕분에 아반떼 N의 높은 토크에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 변속기는 다양한 기능도 수행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N 그린 쉬프트(NGS), N 파워 쉬프트(NPS), N 트랙 센스 쉬프트(NTS), 런치 컨트롤 등 고성능 특화 기능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즉 아반떼 N의 주행성능에 습식 8단 DCT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습식 8단 DCT가 범용성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미 현대차 싼타페와 기아 쏘렌토에 적용되고 있고, 쏘나타 N라인(2.5 터보)에도 들어갑니다. 다양한 차종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상용 제품에 있어 중요한 일이죠.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 스포츠 세단
아무도 없는 커브길에서 아반떼 N의 배기음이 폭발합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러고는 다시 맹렬하게. 이 차는 리듬을 타고 달리는 맛이 있습니다. 빠른 엔진 반응을 끌어내는 변속기, 높은 앞바퀴 그립력, 좌우 무게 이동을 잘 받쳐주는 단단한 서스펜션, 정확한 핸들링까지. 모든 부품과 부속, 시스템과 알고리즘이 빈틈없이 연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변식 배기 시스템이 공격적인 배기음을 쏟아냅니다. 이 차를 사는 사람들은 분명 이러한 것을 원할 것이고, 현대차는 그들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었습니다.
우리는 아반떼를 준중형 세단의 표준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이 차는 무서운 잠재력을 숨기고 있습니다. 아반떼에서 엔진과 변속기, 일부 부품을 바꾸면 아반떼 N이 됩니다. 이 차는 TCR 월드투어 우승을 차지하고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수년 간 클래스 우승을 차지한 경주차입니다.
자동차에게 가장 가혹한 환경인 경주에서 섀시가 온전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고, 24시간 동안 달린다는 건 그만큼 탄탄한 내구성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덕분에 일반 아반떼도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섭니다. 여기에 2.0리터 터보 엔진과 습식 8단 DCT를 넣으면, 운전자를 벅차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차가 되는 거죠.
아반떼 N은 고성능 모델의 기준점에 잘 부합하면서 세단으로서의 장점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일상에선 편하고 안락한 세단으로, 때에 따라서는 달리는 즐거움과 설렘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아반떼 N은 최고의 선택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3천만원 대의 가격으로 이렇게 높은 출력과 퍼포먼스를 내는 차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찾기 힘듭니다.
■ 글. 이진우 I 사진. 박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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