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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과 콘클라베

‘하베무스 파팜!’ 드디어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라틴어로 ‘우리에게 교황이 있다’는 뜻의 ‘Habemus Papam’은 전임 교황의 뒤를 이어 교회를 이끌 새로운 교황이 선출된 직후에 선포되는 선언문이다. 제267대 교황으로 미국 출신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선출됐고, 앞으로 사용할 즉위명은 ‘레오 14세’다. 지난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이후, 17일 만이자 콘클라베가 시작된 지 이틀째에 4번째 투표로 결정됐다. 2005년 베네딕토 16세와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것도 투표 둘째 날이었다. 이번에는 추기경들의 숫자가 많고 유력한 후보도 다수였기에, 더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지만, 역시 둘째 날 결정됐다.
 

출처: <VATICAN NEWS> Youtube

이처럼 교황 선출 직후의 선언문, 검은 연기와 흰 연기, 새로운 즉위명, 그리고 투표의 횟수 등의 이야기는 이제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친숙한 것이 됐다. 선출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속속들이 보여준 <두 교황>(2019)과 <콘클라베>(2024)라는 영화 덕분이다. 콘클라베(Conclave)란 단어는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비공개회의를 뜻한다. 투표를 위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모인 추기경단은 콘클라베 기간 외부 출입이나 연락을 할 수 없다. 외부에선 오로지 성당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색으로만 투표 결과를 알 수 있는데, 새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검은 연기가, 선출되면 흰 연기가 나온다. 이 과정이 추기경단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매일 반복된다.


만약 사흘간 투표해도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추기경들은 하루 동안 투표를 중단하고 기도와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이 또한 영화 <두 교황>과 <콘클라베> 중 하나라도 관람했다면, 이미 알고 있을 내용이다. 이번 콘클라베는 OTT 서비스 중 하나인 ‘디즈니+’에서 첫날 2시간 동안 라이브 스트리밍되기도 했다. “똑같네, 똑같아!”라며 영화로 본 것을 실제로 확인하고픈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심지어 미국 영화잡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바티칸의 추기경들이 최근 개봉한 영화 <콘클라베>를 참고 자료로 삼았다는 요지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성직자는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바티칸 정치와 의전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영화를 통해 선출 절차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미 콘클라베가 끝나고 새로운 교황 레오 14세의 집무가 시작된 이 시점이지만, 아직 두 영화를 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몇 가지 감상 포인트를 정리해 보려 한다.

 


<두 교황>(2019)은 자진 사임으로 바티칸을 뒤흔든 교황 베네딕토 16세(앤소니 홉킨스)와 그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조나단 프라이스)의 실화를 담은 이야기다. 추기경 시절 그들의 본명은 각각 요제프 라칭거,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였다. 각각 독일과 아르헨티나 출신인 두 교황은 ‘교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더 높고 견고한 담을 쌓아야 한다’는 보수와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지어야 한다’는 진보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교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견해 차이를 치열한 설전으로 보여준다. 프란치스코가 보기에 베네딕토 16세는 꽉 막힌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있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바티칸 문서 유출 스캔들에 휘말렸고, 베네딕토 16세가 측근의 또 다른 스캔들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속속 제기되며 권위가 실추되던 시점이었다. 아동 성추행과 학대를 저지른 신부들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영화에 삽입된 당시 자료화면을 보면 그를 ‘나치 교황’이라고 저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그가 베르골리오 추기경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후임자로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꽉 막혀 보였던 베네딕토 16세가 “어느 순간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 됐다”고 고백한다. “과거에는 주님이 내게 원하는 걸 다 알 것 같았소. 그런데 이제는 영적인 보청기가 필요할 것 같소.” 


하지만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그에 선뜻 응하지 못한다.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197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군사 독재에 의해 정부가 전복되고, 그가 이끌던 아르헨티나 예수회도 붕괴 직전에 다다른다. 많은 신부와 수녀들이 살해당하는 상황에서 그는 그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군사 정부 지도자를 만나 설득하려고 했다. “가서 살인자들과 차나 드세요.”라는 동료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타협했던 것. 얘기를 듣던 베네딕토 16세가 “당신은 신학교에 노동조합원들을 숨겨주고, 그로 인해 수십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소”라고 말하지만, 그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한다. 그것은 “교황이 되는 것은 순교자가 되는 것”이라던 그가 언제나 마음에 품고 참회하는 일상의 이유였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베르골리오, 아니 프란치스코는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지만, 늘 자신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러한 태도가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넘어 베네딕토 16세로 하여금 그가 ‘적임자’라고 생각하게 만든 이유였다. 콘클라베를 앞두고 베르골리오야말로 교황의 자리에 적임자라 생각했던 어느 추기경 역시 플라톤의 말을 인용해 이야기한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지도자가 되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고 했죠.”


<두 교황>에서 프란치스코가 들려준 많은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레오 14세의 행보와 비교되어 회자될 것이다. 역대 가장 인기 있는 교황의 후임이라는 부담감과 무게감이 장점이 되느냐, 단점이 되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 지켜볼 일이지만, 그런 점에서 이 시점에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영화다.


올해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한 <콘클라베>는 <두 교황>과 달리 교황의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콘클라베를 지휘하는 단장 로렌스(랄프 파인즈)를 중심으로 선거의 전반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당선이 유력했던 후보들이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1위 후보는 계속 바뀌고, 콘클라베를 둘러싼 음모와 탐욕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영화는 투표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비밀 서약을 한 추기경들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으며 신문 열람도 할 수 없다. 도청을 막기 위해 시스티나 성당 내에는 도청 및 녹음 장치 설치 여부를 확인하는 사전 정밀 수색도 진행된다. 그 외에도 교황이 선종한 방을 봉인하는 과정이나 투표 전후의 라틴어 맹세, 그리고 투표용지의 보존을 위해 구멍을 뚫어 놓는 전통 등 일반인이 절대 알 수 없는 세부 과정까지 보여준다. 그리고 추기경들은 교황 선출과 관련된 내용을 비밀에 부치겠다고 서약한 뒤, 이를 어기면 파문당한다.  

 

 

탄탄한 리얼리티 위에 로렌스를 중심으로 의심에 의심, 반전에 반전이 이어진다. 지금 이 시점에 <콘클라베>를 본다면, ‘왜 언제나 예상 밖의 인물이 선출되는지’ 보여주는 영화여서 무척 흥미롭다. 정치인 선거에서 흔히 보게 되는 ‘준비된 후보’란 말이 여기에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물론 영화처럼 의심과 폭로, 상승과 추락이 동반되지는 않겠지만 과거의 실제 콘클라베도 늘 예상을 비껴갔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표적이다. 2013년 콘클라베 당시 그는 무려 15위에 자리한 비주류 후보였지만 교황으로 선출됐기 때문이다. 그 전 베네딕토 16세 역시 유력 후보가 아니었고 투표 초반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막바지에 표가 몰리며 교황으로 선출됐다.

 

이번 콘클라베도 마찬가지다. 여러 언론과 베팅 사이트를 통해 이탈리아의 파롤린 추기경을 필두로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이탈리아의 마테오 주피 추기경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영화 <콘클라베>에서 본 것처럼 최종 선택은 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와 영향력이 엄청났기에 그와 연속성을 지닌 진보적 추기경이 선택받을 거란 기대가 컸던 것. 프레보스트는 프란치스코의 최측근이긴 했어도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실제 투표 과정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영화 <콘클라베>를 보면 그 극적인 과정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현실의 추기경들은 그 과정을 누설했다가 파문당할 수 있기에 영화에서처럼 입을 꾹 닫고 있을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은 총 4번의 투표에서 어떤 ‘확신’을 가지고 투표했을까. 

 


<콘클라베>는 그들도 어쩔 수없는 ‘인간’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그래서 영화 속 차량 폭탄 사고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추기경들의 격렬한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외부 폭발 사고로 성당 외벽과 창문이 무너져 내린다. 참혹한 광경이 분명하나, 마치 르네상스 종교화를 보는 것처럼 계시적으로 느껴진다.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라는 로렌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는 것. 애초에 확신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며 언제나 완벽한 선택이란 없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실수투성이다. <두 교황>의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가 서로의 견해 차이를 넘어 공감했던 것, <콘클라베>의 최종 선택이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다. 두 영화는 종교를 떠나 레오 14세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화두를 던져준다.

 

■ 글.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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