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현대인은 수면 시간과 운동, 몸 전체를 사용하는 작업을 할 때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앉아 있다’. 등교 시간이 다가옴에도 기척 없는 아이에게 엄마는 ‘OO아, 일어나’라며 소리를 치다가, 잠시 후 ‘일어났니?’라고 물으며 방문을 연다. 일어난 아이는 침대에 ‘앉아서’ 정신을 차리려 애쓴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다시 변기 위에 ‘앉으려’ 화장실로 들어간다. 엄마의 재촉에 못 이겨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달려가 탄 등교 버스 안에서는 정말 운이 좋으면 ‘앉게’ 된다. 그렇게 교실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하루 종일,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늦은 밤까지 ‘앉아 있을’ 학교 의자가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이 장면을 학교 대신 직장으로 바꾸더라도 앉는 자세는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정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루 종일 마주치는 이런저런 의자들은 각기 다르다. 그동안 만들어진 의자의 종류를 전부 세어본다면, 과연 얼마나 될까? 의자의 시작은 다른 모든 도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수요, 즉 앉아야 할 필요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초기 인류는 방금 일어난 아이가 침대 위에 앉듯 그냥 의자 없이 앉았을 것이다. 쪼그려 앉기도 했을 것 같다. 그러다 서 있는 것과 바닥에 앉는 중간쯤 높이에 엉덩이를 걸칠 뭔가가 있다면 좀더 편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초의 그 무엇은 나무 그루터기나 돌덩이 같은 것이었겠지만, 차츰 도구를 만드는 행위가 발전하면서 인간은 적당한 것을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발상과 기술이 고도화되면서는 전보다 무겁고 큰 덩어리도 보다 쉽게 다룰 수 있었다. 자르고 다듬어 엮어내는 식으로 발전된 그것은 차츰 우리가 알고 있는 의자와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의자의 과거를 더듬다 보면 등받이는 나중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요즘은 워낙 등받이가 보편적이라 등받이 없는 의자가 특별한 경우에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좌판만 있어도 앉는 행위가 가능해지므로 본질적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것이 맞다. 알고 보면 등받이의 주된 용도는 지위를 과시하는 상징적 기능이다. 예컨대 직원용 의자와 임원용 의자는 등받이의 높이로 구별된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계급적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고대 왕정 사회에서도 비슷했다. 지위가 높은 자는 높은 곳에 앉았으며, 더 크고, 화려한 의자에 거만한 자세로 기대앉아 낮은 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점에서 의자는 그곳에 앉은 자의 신분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했다.
안락의자는 그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편안함은 권력의 상징이었으며, 등받이에 기대어 긴장하지 않는 권력자의 위엄과 여유를 보여주었다. 유럽 왕정 시대의 왕과 귀족들은 스스로 지성과 품위를 갖춘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더 복잡한 장식과 값비싼 재료로 의자를 만들었다. 그러다 20세기 들어 모더니즘의 이상이 꿈틀대던 1928년,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꼬르뷔지에가 ‘그랑 꽁포르Grand Confort(위대한 안락함)’라는 이름의 의자를 선보인다. 직선으로 결합한 금속 파이프 뼈대가 그대로 노출된 이 안락의자는 사각 덩어리 모양의 검은 쿠션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정육면체에 가까운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대부분의 안락의자가 신분의 표현을 놓지 않으려 했던 것과 달리, 그랑 꽁포르는 위대한 생각이 신분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음을 당당히 표현한 의자였다.
또 다른 의미의 편안한 의자는 사무용 의자 ‘에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무는 현대의 보편적 작업으로서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좋은 사무 환경 조성이 일의 효율을 올리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밝혀진 후, 사무의 핵심인 의자를 잘 만드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해졌다. 에어론은 척추가 자연스러운 형태를 유지하도록 해주고, 틸팅 시스템을 통해 부드럽게 등을 기대면서도 발은 바닥에 닿아 안정성을 보장한다. 신체에 맞춰 의자 높이, 팔걸이 위치, 기울기 강도 등을 조절할 수 있으며 쿠션이나 천 대신 팽팽한 통기성 소재를 사용하여 장시간 앉아도 몸에 땀이 차지 않도록 배려했다. 이는 모두 인간공학적 검토를 거친 것으로,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의 워너비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미래의 의자들은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까? 에어론의 사례로 알 수 있듯 인체공학이 뒷받침된 디자인 솔루션은 그 영향력이 크다. 이런 테크놀로지 기반의 접근이 가장 발전적으로 적용된 사례가 바로 자동차의 의자, 시트라 할 수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자동차 시트는 마차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많은 교통 사고의 참혹한 결과가 자동차 시트에 대한 접근법을 제시했다. 그 결과 자동차 시트 디자인에는 인간공학, 재료공학, 기계공학의 핵심 요소가 적용됐고, 현대의 자동차 시트 기술로 이어졌다. 현재 프리미엄 자동차 시트는 시트 자체로 요추 지지와 압력의 분산과 진동 흡수 등의 기능을 갖춘 것은 물론, 에어론처럼 운전자가 신체의 특성에 맞춰 최적의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또한, 주행 중 피로를 줄여주는 맞춤형 마사지 기능을 갖춘 시트 시스템도 개발돼 상용차에 적용되고 있다.
최근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술 발달은 자동차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AI는 자동차를 인간에게 봉사하는 지적 도구로 변신시켜 나갈 것이다. 그때 자동차 시트는 과연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까? 혹시 시트가 코쿤(Cocoon)처럼 내부 공간과 하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과거 일상의 의자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자동차 시트는 하이테크가 더해지면서 다시 우리 일상생활의 의자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 모습은 어떨지 상상의 나래를 펴고, 상상의 구현에 조금씩 다가가면서 미래는 열릴 것이다.
■ 글. 이주명 교수 (연세대학교 산업디자인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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