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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폭우에도 걱정 없는 전기차 생활

누구나 알다시피 전기와 물은 상극이다. 물은 전기가 잘 통할 뿐 아니라 틈새로 잘 스며드는 만큼 전기를 쓰는 장치가 물을 만나면 합선과 누전 등으로 고장나기 쉽다. 나아가 장치의 고장에 그치지 않고 화재의 원인이나 감전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전기를 쓰는 장치는 늘 물과 거리를 두고, 어쩔 수 없이 물이나 습기에 노출되는 장치는 방수 처리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전기 에너지의 힘으로 달리는 전기차는 어떨까? 자동차는 변화무쌍한 날씨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로 움직이기 마련이어서, 장마철의 잦은 비와 습한 공기를 피하기가 어렵다. 특히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 이른바 극한 호우를 경험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평상시에 멀쩡하던 길이 순식간에 흙탕물로 가득 차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어떤 차든 폭우와 침수가 위험하긴 마찬가지지만, 전기차는 전기가 갖는 특성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전기차가 보급되고 있는 만큼 전기차 사용자들의 걱정도 따라서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하이브리드 차 역시 걱정의 대상이긴 마찬가지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라고 해서 전기와 관련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전기와 물이 상극이라는 점은 자동차 업체들도 잘 알고 있어, 전기차를 만들 때 충분한 안전장치와 방수 처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도 생활 방수 설계 덕분에 물에 빠트려도 전원을 끄고 완전히 말린 뒤 다시 켜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전기차는 그보다 훨씬 더 가혹한 조건을 고려해 설계되는 만큼, 웬만한 조건에서는 전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홍수철 뉴스에는 물속을 달리는 전기차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심지어 차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관련된 감전 사고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전기차의 전기 관련 안전장치와 방수 설계가 그만큼 철저하게 적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기술적으로 짚어보면,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팩, 인버터, 전동 컴프레서 등 고전압 부품은 방수 코팅, 이중 차단 구조를 갖춘 하우징으로 완전히 밀폐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완전히 밀폐’의 수준은 국제 표준인 IP 등급(Ingress Protection Rating)으로 분류된다. 전기·전자 제품이 먼지와 물로부터 얼마나 보호되는지를 수치화한 기준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 등 주요 브랜드 전기차에 적용되는 ‘IP67’ 기준 설계는 완전한 외부 먼지의 차단과 1m 수심에서 30분간 방수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기차의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과 고전압 안전 시스템에는 수위 센서와 절연 저항 모니터링 기능이 포함돼 있어, 침수나 절연 이상을 감지하면 충전과 주행을 자동으로 제한하는 등 비상 보호 조치가 이루어진다.


물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1. 물이 고인 곳은 웬만하면 들어서지 않는 것이 먼저다. 

얕은 물이라면 특별히 걱정할 것은 없지만, 만약 바퀴 전체가 잠길 정도로 침수됐을 때는 예방 차원에서 점검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그 정도 깊이의 물이라면 배터리를 포함해 차의 전기 관련 장치들이 모두 물에 잠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 정차 상태에서 일정 수위 이상에 오랫동안 방치되었을 경우, 차를 움직이지 말고, 전문가의 점검부터 받아야 한다. 

방수 처리가 되어 있다고 해도, 물속에서 어떤 손상을 입었을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조심하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이전에 차체 아래쪽이 과속방지턱에 부딪치는 등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면, 평상시 문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물에 잠긴 뒤에는 점검부터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우천 시 배터리 충전이 괜찮을지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 역시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생각과 달리, 플러그를 꽂는 즉시 고전압 전기가 흐르지는 않는다. 충전기와 전기차의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 작업이 먼저 이루어지며, 알맞은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야 충전이 시작된다. 충전기와 전기차 가운데 어느 쪽이든 누전을 비롯한 이상이 있다면 충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걱정스럽다면 충전하기 전 플러그를 확인하고 젖은 바닥에 떨어져 있거나 습기에 노출되어 젖은 것은 쓰지 않는다. 나아가 가급적 외부 환경에 노출되지 않은 실내 충전 시설을 이용하면 심리적 부담은 충분히 덜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급속충전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전압과 전류가 흐르는 완속충전기를 쓰는 쪽이 조금 더 안전하다. 


4. 주변에 번개가 심하게 칠 때에는 충전기 사용에 특히 주의하고 가급적 충전을 피하는 것이 좋다. 

직접 벼락에 맞을 확률은 매우 낮지만, 번개의 영향으로 충전 관련 장치가 오작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기차가 벼락을 맞더라도 전기는 대부분 차 밖으로 흘러 지면으로 전달되며, 차 내부에서는 보호회로가 작동하는 만큼 직접 피해를 입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부품의 손상으로 누전되거나, 특정 부품에 전기 에너지가 남아 있을 수도 있으므로 시동을 걸지 말고, 전문가에게 먼저 점검을 받아야 한다. 

 

  

 

 

5. 교통사고로 파손된 차의 침수는 특별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배선이나 전기장치 연결부도 함께 파손되어 전기가 샐 수도 있다. 특히 겉으로 보기에 차의 파손 상태가 심하지 않더라도 내부 부품이 망가졌다면 누전될 가능성은 있으므로, 섣불리 차에 손을 대기보다는 사고를 처리할 소방 및 정비 전문가가 알맞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차의 상태를 미리 알리고 맡겨야 한다. 같은 이유로, 사고로 수리한 이력이 있는 차라면 침수된 길이나 오랜 시간 비가 내리는 곳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다. 

 


 


전기차를 포함한 모든 차는 상식선에서 쓰이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즉 상식을 벗어나는 조건에서 상식과 다른 방식으로 쓰지 않는 한 크게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고 봐도 좋다. 비상식적인 날씨가 자동차와 사람을 괴롭히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는 있지만, 그런 환경을 최대한 피하고 조심해서 쓴다면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차와 함께하는 생활은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평온할 것이다.

 

글. 류청희 (자동차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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