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려면 약 2~3만 개의 부품이 필요하다. 자동차 산업은 기술, 품질, 물류, 비용 등 다양한 요소를 바탕으로, 전 세계 부품 기업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과 생산을 분산해 왔다. 이는 비용 절감과 생산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한 전략적 선택의 결과다. 게다가,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자본이 투입되기 때문에, 글로벌화된 시장을 확보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완성차 업체들은 내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해외 시장으로의 판매를 적극적으로 확대해 왔다. 현재 자동차 산업이 세계 교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통상 및 교통, 환경 정책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된 이유다.
이러한 자동차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2025년 상반기는 어느 때보다 글로벌 환경의 불확실성이 큰 시기였다. 특히 통상 환경의 변화와 각국의 정책 기조 전환으로 자동차 산업 전반에 복합적인 리스크를 초래하고 있다. 미국이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해 25%의 고관세를 부과하며 보호무역 정책을 강화했고, 이에 대응해 주요국들도 통상 장벽을 높이고 있다. 친환경차 시장 성장을 견인하던 환경 규제 역시 다소 완화되는 추세다. 각국은 자국의 자동차 산업 보호를 위해 친환경차 전환 속도를 조절하며,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연간 160만 대 수준의 비교적 작은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 실현을 위해 글로벌 시장 개척과 수출 중심의 성장 전략을 펼쳐왔으며, 그 결과 연간 약 400만 대 생산 경험을 축적한 세계 5위권 생산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전체 생산량의 65~70%를 수출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최근 급격한 글로벌 환경 변화는 산업 전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고관세 부과는 시장 대응 전략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고관세 정책이 본격화되면, 수출 물량은 현지 생산으로 일부 대체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부품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대미 수출은 429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46.7%에 이른다.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 등 고부가가치 친환경차의 수출 증가로 미국 시장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2025년 자동차 수출은 전년 대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부상도 주요 변수다. 중국은 최근 공격적인 전기차 설비 증설과 함께 내수 한계치를 넘어선 자국 생산량을 해외 시장으로 돌리고 있다. 러시아, 중동, 동남아 등 신흥 시장뿐 아니라, 유럽 등 선진 시장에도 진출하며 수출을 확대하는 중이다. 2023년부터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이 된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EU는 최대 45.3%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관세 대신 수출 가격과 양을 통제하는 가격 약정 방식 등을 논의 중이다. 한편, 국내에는 BYD가 2025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데 이어, 하반기 지리자동차도 진출할 예정이다. 다만 브랜드와 품질에 보수적인 국내 소비자들에게 중국 전기차의 판매 확대는 제한적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의 성장은 기존 전망보다 늦춰지는 추세다. 2024년 이후, 중국을 제외한 주요 시장에서는 전기차 보조금 전면 폐지(독일), 인프라 확충 지연(미국), 전기차 화재 사례(한국) 등 구체적인 이슈들이 수요 위축을 초래했다. 이처럼 주요국의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환경 규제 역시 완화되고 있다. EU는 2025년 배출가스 규제를 93.6g/km까지 강화할 예정이었지만, 과징금 부과를 유예하기로 했다. 미국도 트럼프 재집권에 따라 시행 중인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폐지하는 법안이 발의되는 등 기조 전환이 예상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현지 생산을 통해 고관세 부담을 줄이면서 시장 점유율 확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 채터누가에 공장 확장을 검토 중인 폭스바겐을 비롯해 GM, 포드, 닛산, 도요타 등 주요 업체들도 미국 생산 설비를 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편, 한국 자동차 산업도 통상 정책 변화로 인하여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등을 중심으로 미국 내 생산설비를 늘리는 추세다.
미국의 고관세 정책과 글로벌 수요 위축 등의 영향으로, 2025년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전년 대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완성차 업체들은 내수 부문의 활로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신차 출시와 판매 전략 강화에 나서고 있으며, 정부도 내수 진작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올해 내수 판매는 전년 대비 3.5% 증가한 170만 대 수준에 이를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자동차 산업에 주어진 과제는 국내 수요의 안정적인 확보일 것이다. 노후 차 교체 지원 재시행, 생애 첫차 구매 지원, 개별소비세의 한시적 인하 등 적극적인 내수 진작책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고,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통상 변화에 공동 대응할 수 있도록 정부, 기업, 연구 기관 간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기업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채널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생산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 환경 개선과 기술 경쟁력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 제조 시스템 구축은 생산 효율성과 품질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공급망 전반의 디지털 전환과 더불어, 전문적인 운영 인력 양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국내 중소 협력업체들의 스마트 전환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점을 고려하여,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정책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기반이 뒷받침되어야만,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도 한국 자동차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글. 김경유 KIET 선임연구위원
(디지털·AI 전환생태계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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