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동화 시대, 운전의 즐거움은 사라질까?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삶에서 불편과 위험을 걷어냈다. 그리고 인간이 지녔던 재주도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됐다. 성냥은 라이터에게 자리를 내줬고, 필름카메라는 스마트폰에 밀렸다. 자동차도 예외가 아니다. 전동화와 자율주행이 일상으로 스며들면서 ‘운전의 즐거움은 사라지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대두된다. 엔진의 박동, 기어가 맞물리는 감각, 회전수를 맞추는 발끝의 섬세한 움직임 등 소위 ‘손맛’을 숭배하는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전기차의 무음, 무진동, 무변속은 황무지 같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더 이상 운전의 즐거움을 탐닉할 수 없는 것일까?
 

 

손과 발의 공예, 수동변속기의 시대

아주 오래 전, 변속기는 단순한 구동장치가 아니라 운전의 문법이었다. 클러치 페달의 무게, 변속 레버의 스트로크, 동력이 전달되는 순간의 기계적 연결감은 기계와 인간 사이의 호흡이었고, 즐거움은 이런 동력의 흐름을 통제하는 숙련도에서 나왔다. 운전자는 토크의 흐름을 빠르게 결정하고 오른손과 왼발로 가감속의 리듬을 조율했다. 힐앤토, 더블클러치 등 고난도 동작에 따른 완벽한 매칭은 차가 가벼워지는 듯한 희열로 다가왔다. 이 시기 운전의 즐거움은 이처럼 양손과 양발의 숙련도에 있었다. 
 

 

 

자동변속기의 편안함이 즐거움을 대체했을까? 

 

자동변속기가 보편화되자 편의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정체 구간은 더 이상 왼발의 고행이 아니었고, 도심주행의 피로는 눈에 띄게 낮아졌다. 하지만,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은 이를 재미의 퇴색으로 받아들였다. 모터보트를 한심하게 여기는 돛단배의 키잡이처럼, 그들은 손과 발의 노동을 운전의 본질로 여겼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동변속기 토크컨버터의 슬립 제어와 락업 클러치의 정교함은 변속기의 고장을 줄였고, 다단화는 기어비와 변속 타이밍을 촘촘히 세분화하면서 가속성을 높였다. 게다가, 똑똑해진 TCU(Transmission Control Unit, 전자제어장치)는 운전자의 페달워크를 학습하면서 최적의 변속 타이밍을 찾아냈다.


생각해보자. 수동변속기 시대 운전자들은 시동이 꺼지는 걸 우려해 반클러치를 사용하면서 변속기를 갉아먹으며 변속기의 수명을 줄였다. 다단화는 어떤가? 수동변속기를 다단화하면 오른손과 왼발이 훨씬 바빠지고 운전은 더 불편해진다. 자동변속기라는 이유만으로 재미가 사라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리하면 예전엔 ‘손의 노동’에 있다고 생각했던 재미의 질감이 ‘리듬의 유지’로 이동했을 뿐, 부드럽고 편안한 동력계 움직임은 또 다른 형태의 만족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패속도를 감각으로 끌어올린, 패들 시프트

 

여기에 패들 시프트가 등장하면서 자동변속기의 편의 위에 의도적 개입의 기회도 열렸다. 더욱이 클러치를 두 개로 늘리면서 변속기는 사람의 손기술을 가뿐히 넘어서는 변속 속도를 제공했다. 브레이킹-턴인-가속으로 이어지는 코너 하나에 두세 번씩 패들을 당기며 차의 자세와 토크 배분을 미세하게 재구성했다. 기어봉의 물성은 사라졌지만, 타이밍을 지배하는 지적 쾌감은 오히려 커졌다. 손맛의 촉각이 리듬과 타이밍을 연주하는 감각으로 바뀐 것이다. 여전히 수동변속기를 사용했다면 우리는 패들 시프트도, DCT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이전에 몰랐던 미세한 감각

130년 자동차 역사가 뒤집혔다. 엔진도 없고 변속기도 없다. 엔진 회전수를 조율하기 위해 기어를 만들고, 그 기어를 제어해 자동차 속도를 높였던 역사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즉각적인 토크 응답과 회생제동이라는 새로운 리듬이 생겼다. 스로틀 입력과 가속 사이의 지연이 사라지면서 스티어링과 가속페달의 미세한 조율이 곧바로 차체 거동에 반영된다. 소음이 낮아질수록 노면 정보와 타이어 마찰음 등 하체의 부담과 긴장이 더 선명하게 들린다. 


변속의 드라마가 사라졌다는 아쉬움은 이해되지만, 다른 드라마가 열렸다. 전기모터 기반의 전자제어 토크 벡터링은 전후좌우 구동력을 개별적으로 배분해 기계식 디퍼렌셜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선회력을 가능케 한다. 전기차는 변속 대신 하중 이동과 접지 한계의 미세한 경계선을 확대해 보여준다. 엔진이 없으니 재미의 설계 자체가 바뀐 셈이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함께 사용하는 복합 구동 시스템으로, 두 세계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이어 준다. 예컨대 일상 주행에서 전기 모드의 정숙성과 즉각적인 토크 응답을 즐기다가, 고속 구간 엔진 구동 시에는 회전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전환 구간마다 변속기와 모터가 정교하게 협력하면서 운전자에게는 전기차의 매끄러움에 내연기관차의 손맛까지 한 번에 체감할 수 있는 독특한 리듬을 경험하게 해준다.


일부 전기차가 가상 사운드와 가상 시프트를 제공하는 것에 고개를 갸웃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인위적인 연출은 낯설지 않다. 터빈이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 과장된 배기 사운드 등 우리가 이미 받아들여온 장치들 역시 감각을 재단하는 기술이었다. 전기차의 가상 사운드 연출은 운전자에게 속도감과 상황 인지의 단서를 제공하려는 의도다. 피스톤이 내는 소리든 스피커가 내는 소리든, 목적이 선명하고 조율이 정교하면 운전은 재미있어진다. 


한편, 최근 등장한 아이오닉 N 시리즈와 같은 고성능 전기차 라인업은 전동화가 주는 새로운 스릴을 증명하고 있다. 초고출력 모터가 발휘하는 즉각적 최대 토크로 터보 래그나 변속 지연이 없는 직관적이고 폭발적인 가속감을 선사하고, 스티어링과 페달의 미세한 조작은 곧바로 차체 거동으로 이어진다. 엔진 사운드가 없어도 강한 몰입을 이끌어내며, 노면을 움켜쥐듯 가속하는 감각은 기존 고성능 내연기관차와는 다른 결의 감각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자율주행, 운전으로부터의 해방

자율주행의 문턱에 서면 변화는 더욱 뚜렷해진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 차로 유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이미 일상이 된 지금, 완전자율주행이 보편화되면 주행의 의미는 재정의될 것이다. 통근과 장거리 이동은 더 이상 운전이라기보다 대중교통의 영역으로, 반대로 운전의 즐거움은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옮겨 갈 가능성이 크다. 그때 도로 위 대부분의 이동은 안전과 효율, 친환경 같은 공공의 가치를 중시하게 되고, 운전 그 자체의 쾌감은 서킷처럼 규칙과 안전이 통제된 공간에서 더 순수한 형태로 남을 것이다. 


사진이 스마트폰으로 대체됐어도 누군가는 여전히 필름카메라를 들고, 모든 악기 소리를 컴퓨터로 만들 수 있어도 누군가는 기타를 앰프에 꽂는다. 운전도 다르지 않다. 운전이 불필요한 시대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운전대를 붙잡겠지만, 그 행위는 점점 서킷 등 한정된 공간의 취미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일단 완전자율의 해방을 맛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운전을 좋아해도 일상에서 다시 운전대를 고집할 이유가 적어질지 모른다. 세상엔 운전만큼이나 재미있는 일이 많다. 이동 중 영화를 보고, 글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 자유 자체가 훗날의 현대적 즐거움일 것이다.


필자는 자동차 전문 기자로 지난 20년 동안 가장 최신의 자동차를 타고, 세계 여러 서킷을 달리며 운전의 즐거움을 탐닉했다. 그럼에도 완전자율주행의 시대가 오면 그 누구보다 먼저 운전대를 놓을 것이다. 도로에서 나를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그리고 친환경적으로 데려다 주는 기술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다시 운전의 즐거움이 그리워진다면, 서킷에 가서 돈을 내고 원하는 만큼 내연기관차를 타면 된다. 타이어 비명과 브레이크가 타는 냄새의 전율은 아주 가끔 누리는 선택적 사치로 충분하다.
 

 

 

글. 이진우 자동차칼럼니스트

공유하기